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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박진 학우(사진영상미디어과 1)

등록일 2022년09월07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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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번아웃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번아웃이 찾아올 만큼 무언가에 성실하게 임하고, 열정적으로 매진해본 적도 없다. 만에 하나 비슷한 권태를 느꼈다 하더라도 그건 나태한 나 자신의 게으름으로 생각하며 넘겨버리곤 했으니 그런 무기력을 느낄 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 홀로 독방에 갇혀 문을 테이프로 칭칭 감았더니 체력이 고갈되어 심신이 지쳐버리는 번아웃 같은 건 들어올 수가 없었다.

 

홀로 독방에 들어간 시점이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과묵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시기인 것 같은데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렇진 않았다. 그때는 학교에서 여러 친구들과 멋진 선생님에게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걸고 하굣길에는 지나가던 모르는 할머니한테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정도로 맑았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던 시기쯤부터 자신을 가둬버리고 말 많고 웃음기가 가득했던 아이는 과묵하게 변해 버렸다. 그렇게 묵묵하게 가둬진 공간에서는 허울뿐인 익살만 늘었다. 그 이외에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기억이 안 나는 걸로 보면 익살스러운 행동 이외에는 허무한 시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떠나가 버린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친구들은 명확한 목표들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학업을 성실히 이행하며 미래에 대한 계획을 그려 나가고 있었다. 이 사실조차도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뒤늦게 닫힌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깨달았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은 열등감도 여기서 시작된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도 정신은 못 차렸다. 나아가는 친구들의 등을 바라보면서 급하게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목표로 잡을만한 것을 찾고 여러 시도를 했다. 주변에서는 많은 것을 두려움 없이 도전한다며 부러워했지만, 그 내막에는 초조한 나 자신이 숨겨져 있었고 태생부터 있었던 나의 게으름은 고쳐지지 않았으니 그 도전 스토리의 결말은 짧고 뻔한 실패뿐이었다. 이런 것들을 그저 반복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해버렸다. 이게 전부다. 이 이상의 재미난 이야기도 없는 ‘심심하다’라고도 못할 10대를 보내왔다. 어찌 보면 생각 없이 와버린 대학 생활은 아직 잘 모르겠다. 방을 빠져나오고 시간은 꽤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속은 과묵한 것 같다.

 

하지만 뭔가 달라지고 있었다. 10대의 마지막인 열아홉 살을 입시로 불태우며 재빠르게 달려 나가던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지쳐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최근에도 친구가 “요즘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 뭔가 무기력해. 대학 오면 뭔가... 아. 잘 모르겠어”라며 말끝을 흐린 고민을 털어놨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식으로 나에게 말을 건넨 친구가 이상해 보였다. 분명 잘 나아가던 친구였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저 친구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궁금한 점은 많았으나 구구절절한 질문 따위가 될까 봐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번아웃이 와버린 친구에게 내가 독방 속에서 생각했던 나름의 번아웃에 대해서 말해줬다.

 

“자기 인생의 기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로서 연료를 태울 때는 화끈하게 태워버리고, 연료가 다 타올랐을 때는 기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와서 지금 상태가 어떤지 점검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간 열심히 달린 기차의 페인트가 벗겨지진 않았는지, 엔진이나 바퀴나 선로 따위에 치명적인 문제는 없는지 등 열심히 달리는 번과 점검하는 아웃, 이 두 가지를 모두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번아웃과 무기력을 극복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식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차가 망가져 큰 사고를 겪게 되거나, 정작 달리지는 않으면서 멈춰있는 기차만 바라보며 허망한 꿈만 가지게 될 거야” 이 글처럼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열해버렸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 주제 파악하기 바빴다. 이런 조언을 할 처지가 될까. 하면서 말이다. 실로 유치한 조언이 따로 없었지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버린 친구는 내 조언을 시원하게 받아들이고는 나름의 위로가 되었다며 나에게 감사를 전했다.

 

번아웃에 걸리든 폐쇄적으로 살든 뭐든, 본인이 힘들다면 앞서 말한 두 가지를 능동적으로 잘 수행해 보면 된다. 어떻게든 시간은 흐른다. 빨리 지나가길 바라든, 느리게 흐르길 원하든 시간은 우리 말 따위는 듣지 않는다.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라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방향성이든 자신은 변화한다는 걸 믿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변한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이고 그런 건 없다. 그저 변화했다는 사실만 존재한다.

 

여전히 나는 독방에 적응된 탓인지 이 소란스러운 광장이 익숙하지는 않다. 이제는 나가고 싶은 마음 같아서 빠져나왔는데 다양한 사람이 너무 많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처럼 이제야 기차 시동을 건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너덜너덜한 기차 껍질을 주렁주렁 매단 채 계속 달려가는 사람도 있고, 본인이 기관사라는 사실은 망각하고 정비사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은퇴한 기관사도 있다. 능동적이고 체계적인 훌륭한 기관사도 보인다. 과속주행이 정답처럼 느껴지던 시기는 지났다. 십 대에 앞서가던 친구들도 몇 명은 끊임없이 달리고 있고, 어떤 이는 사고가 나며 또 다른 친구는 멈춰 서버렸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이들은 언급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을 겪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번아웃이든 자기 망상이든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최근에 난 기차의 출발을 알렸다. 기차의 목적지가 또다시 독방이 될지, 새로운 번아웃이 될지, 난 모르겠다.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달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후회는 없다. 영원히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두 다를 것 같다. 번아웃에 고생하는 사람들과 독방에 빠진 사람들도, 모든 사람이 후회가 없길 바란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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