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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도시, 그리고 나의 사진 - 사진영상미디어과 전흥수 교수

등록일 2014년04월15일 00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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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상미디어과 전흥수 교수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사진 촬영을 핑계로 외국여행도 많이 하는 편인데 사실 우리와는 다른 풍물이나 사람들의 사는 모습, 문화를 체험하는 것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외국을 여행할 때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곳이 사람이 사는 마을이며, 한 나라의 느낌을 구체적인 형태로 기억하게 되는 것이 집이나 마을, 또는 도시의 이미지일 것이다. 또한 그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시장이라고 생각하여 재래시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골목길을 따라 걸어보며 도시의 느낌과 전통, 생활 등을 느끼며 카메라에 담는다.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도시의 집합적인 이미지인데, 건물과 자연이 이루는 조형성에 포인트를 두어 도시의 이미지와 집들의 군집 이미지들을 촬영해오고 있다

유럽여행은 집 구경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색깔과 모습으로 펼쳐져 있는 전원의 풍경과 그 속에서 수백 년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마을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100, 200년 전의 주택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 아니라, 1,000, 2,000년 전의 유적이나 건축물들 속에서 현대인들이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고, 아직도 그 유적들을 활용해서 오페라나 연극들이 공연되고 있는 것은 경이롭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그들은 지금도 옛날의 건물이나 유적들, 돌멩이 하나까지도 소중히 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려고 애쓰고 있다. 흙과 돌, 꽃이나 밭과 하늘, 바다의 색깔과 집들이 보여주는 조형미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아름다운 유럽의 자연과 전통마을이 어우러진 너무나 멋진 풍광을 연출해 내고 있으며 내게 무궁무진한 작품 소재를 제공해 준다. 유럽의 풍경 사진은 집이나 마을이 들어감으로써 완성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진을 찍을 경우에 집이 들어가면 사진을 망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집이나 도로, 간판 등 인공물이 화면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마땅히 찍을만한 도시를 찾고 앵글을 잡기가 쉽지 않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집이 들어가면 아름다운 사진, 한국적인 전통이 살아 있는 사진이 되기 어려울까

우리나라에는 한국식 전통마을이 온전히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고 지방의 작은 도시에도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을 정도로 전국의 일반적인 거주공간이 아파트로 바뀌고 있다. 국적 불명의 불량주택이나 다세대, 연립주택이 많고, 농촌도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원색의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있는 개량주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의 온갖 유명 스타일은 다 들여온 고급 주택들도 하나하나는 멋지지만,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마을의 관점으로는 우리 한국 고유의 마을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낡은 집과 새집이라는 이분법과 새것은 좋은 것, 비싼 것, 편리한 것이며 낡은 것은 모두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무의식중에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전통에 대한 존중심을 없애 고층아파트를 우리나라의 표준주택으로 만들어 버렸고, 전통마을이나 전국의 도시를 비슷비슷한 이미지의 개성 없는 도시로 만들어 놓았다. 통영은 바다와 산, 섬 등 세계에 자랑할 만한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동양의 나폴리라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통영 시내는 고층 아파트와 국적 없는 불량주택, 그리고 개성 없는 빌딩이 지배하는 다른 도시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 좋은 자연환경 조건에도 이렇게 몰개성의 도시가 되어버린 모습에 실망하고 낙담하게 된다

외국의 유명도시들에 가보면 구도심과 신도심이 구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수백 년의 전통과 역사와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보호하고 있는 구도심과 전통건물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넓은 길과 고층빌딩 등 현대화된 도시를 뽐내는 신도심으로 나뉜다. 당연히 대부분의 관광지는 구도심에 집중되고 신도심은 호텔이나 식당, 쇼핑, 주거지로 이용된다. 우리나라의 도시는 재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옛 모습은 사라져 버려 도시 전체가 신도시에 해당되며, 관광객이 관심을 가질 만한 구도심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관광객들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최첨단 빌딩이나 화려한 거리를 구경하고 쇼핑만을 위해 관광하는 것이 아니다. 불편하더라도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있는 옛 모습을 보길 원하는 것이다.

나는 특히 이탈리아를 좋아한다. 이탈리아는 서양문화의 본류를 형성한 로마제국의 나라이다.

처음에는 유럽에서 비교적 낙후된 나라, 그리고 조상의 문화와 유적, 전통이나 팔아먹는 나라라는 약간의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여러 차례 이탈리아를 다니면서 유럽에서도 고대와 중세의 느낌이 많이 살아 있는 가장 매력 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도시나 마을은 전통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많은데,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 위 높은 곳에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걸어서는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높은 산꼭대기, 다닥다닥 붙어있는 붉은색의 기와지붕과 황토벽의 수백 년 된 건축물들, 그리고 좁은 미로 같은 골목이 이루는 조형 감은 내게 훌륭한 사진소재를 제공해 준다. 유명 관광지뿐만이 아니라 아무 마을이나 불쑥 들어가 둘러봐도, 충분히 놀랍고 만족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전통적인 마을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다

나라별로 다양한 전통적인 집이나 도시의 조형미는 나의 사진촬영에 훌륭한 소재가 되며, 도시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들만의 특색은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 표현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러한 도시의 이미지를 주제로 한 사진촬영을 계속해 오고 있으며, 그것을 디지털 리터치 프로그램들을 활용하여 나만의 회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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