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봄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뒤죽박죽한 날씨에 일교차도 심한 날이 다반사, 꽃가루로 고통 받는 나의 코. 하지만 매년 돌아오는 길거리에 들리는 노래를 듣다보면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게 되는 노래들이 슬슬 지겨워지고 싫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즉 봄철 노래의 멜로디만을 듣고 즐거워하던 때가 있었다. 봄이란 계절만이 주는 따스한 느낌, 특유의 연분홍색의 분위기, 적어도 내가 아는 모든 봄의 노래들은 그랬다. 들뜬 노래에 나는 언제나 봄만 되면 노래방에 살다시피 해 목이 쉬었던 날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사가 나에겐 노래를 고르게 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면서 고등학교 중반까지 이어져 오던 노래방 생활은 끝을 내렸다.
항상 같은 주제로 끝도 없이 나오는 노래들에 대해 마치 나와는 관심 없는 일을 보는 것처럼 무감각해져버렸다. 통학에만 왕복 4~5시간이 걸리는 나는 올해의 첫 벚꽃을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보게 되었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있는 날씨의 벚꽃은 연분홍이 살짝 섞인 채 희었다. 봄바람이 불자 거리에 흩날리는 벚꽃 잎들 중 하나가 엄지손가락 위에 살포시 떨어졌다. 멀뚱 잎을 바라보다 자연스레 클릭한 음악 플레이어엔 대표적인 봄철 노래들이 추천 곡으로 내 재생목록에 추가되었다. 언젠가 한 번씩 신나게 불렀었던 기억이 있는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이내 별로 내키지 않는 추천 플레이리스트에 나는 휴대폰을 덮었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버스에 급히 꽃잎을 털어내고 지갑을 찾았다. 순간 덜컹이는 버스 안 쪽잠에서 깨어난 나는 환승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는 짐을 서서히 챙겼다. 가방 안엔 방금 전 털어낸 것처럼 보이는 꽃잎이 들어있었다. 혹시나 좋은 노래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아까 전 플레이리스트를 들여다보았다. 몇몇 들어보지 못한 노래들이 섞여있는 것이 보였고, 나는 그런 노래들을 골라내 재생시켰다. ‘누군가와 봄 길을 거닐고 할 필요는 없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머물고 싶은 그런 기억을 만들고 싶어’ 나의 봄을 요약해놓은 듯한 이 한 줄의 가사는 「봄 사랑 벚꽃 말고」의 일부분이다. 별 기대 없이 듣게 된 노래는 가사를 의식하는 순간 당일 내내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 그런 소소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기억을 기부하는 봄이란 계절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들을 노래하는 사랑하는 연인들을 회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또 하루 빨리 봄비와 함께 떨어지는 벚꽃 잎을 바래왔던 것일지도, 그래서 봄, 사랑과 벚꽃을 노래하는 봄철 노래가 지겨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낭만적이고 웃음 가득한 행복을 보는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노래를 들은 이후로 다시 모든 봄철 노래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하나하나의 가사들은 봄의 노래를 기피하게 된 진짜 이유를 알게 된 이후로, 단순히 비슷하고 흔한 가사라기보다 연분홍의 계절을 더 즐기기 위해 마치 윤활제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그 노래들은 봄, 사랑, 벚꽃을 즐기는 사람만이 듣기 좋은 것이 아닌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듯한, 긍정적으로 다가가면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참여의 의미가 되었다. 그러니 혹시나 나처럼 반복되는 봄의 노래에 지겨워하는 모든 이들은 이제는 예전의 봄, 사랑, 벚꽃은 말고. 즐거운 봄, 즐거운 사랑, 즐거운 벚꽃으로 향하게 하는 그 손을 잡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