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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한 끼 식사는 안녕하십니까? -김원경 교수(식품영양학과)

등록일 2023년06월28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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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직장에 있을 때였다. 야근을 위해 단골 식당에 들러 주문한 찌개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미리 나온 반찬을 보고 있었는데 정갈하게 놓여진 밥과 반찬들이 내게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요. 맛있게 드세요.’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듯한 생각이 들어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진 적이 있다.

 

생물학적인 관점만으로 생각하면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이나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신체가 보내는 ‘배고픔’ 신호에 반응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경험하는 식사를 관찰해보면 식사에는 영양분 공급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식사를 하지 못하는 말기 암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식사’란 환자에게 ‘돌봄’을 제공한다는 의미이며, 친구나 연인들이 함께 하는 ‘식사’란 그들 사이의 우정이나 애정을 돈독히 하는 ‘관계’ 형성의 장이다. 일과 이후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은 고된 업무를 서로 ‘위로’하거나 업적을 ‘축하’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식사’는 가정 안에 존재하는 무형의 가치를 ‘교육’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난 우리 사회가 잊어버리고 있지만 ‘식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함부로 버려지고 있는 이 시대에 경제적 이유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자존감’, 나아가서는 ‘존엄성’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요즘 학과에서 학생들과 함께 ‘다이어트 동아리(다동)’ 활동을 하고 있다. 20대 초반부터 비만에 노출되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시작 할 무렵부터 고혈압, 당뇨병 등이 발생할 위험이 높고, 이후에는 심혈관계질환이나 암 등으로 고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식품영양을 전공하는 학생이니까 만성질환 예방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실제 스스로나 친구들을 대상으로 체중을 줄이는 활동을 해보면 전공공부나 향후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이어트 동아리를 결성하였는데, 학생들의 식사일기를 검토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의 식사일기를 보니 우리 학생들은 자신을 돌보기 위해 ‘먹는’ 식사가 아니라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때우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 기록 어디에서도 ‘돌봄’이나 ‘교육’, ‘위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비만이라는 것은 섭취하는 에너지가 소모하는 에너지보다 많아서 발생하는 것이니 ‘때우는’ 식사라도 에너지를 적게 먹으면 지금은 체중이 줄 것이다. 하지만 확언컨대 장기적으로는 ‘때우는’ 식사로는 체중감량에 성공하지 못한다. 체중관리에는 식습관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미 교과서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그 식습관을 바꾼다는 것에 ‘식사’의 다양한 의미를 회복시킨다는 것을 한 줄 첨언하고 싶다.

 

학생들의 식사일기를 보면서 작금의 식생활 문제는 우리 세대의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적어도 나는) 어머님이 차려주시는(맞벌이를 하셨음에도) 식사를 먹으면서 자랐다. 직장생활하면서 식구들과 식사하는 횟수가 줄게 되자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가족과 꼭 같이 식사해야 한다’는 아버님의 엄명에 따라 일요일 아침은 온 식구가 함께 식사를 했다. 가족과 같이 식사하지 못하는 날이라도 집에 가면 반찬을 곁들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반찬을 곁들여 먹는 우리 한식은 영양적으로 균형잡힌 식사를 할 수 있는 좋은 식사이다. 이런 식사를 배우며 자랐고, 영양을 업으로 30여년 일해 온 나조차도 요즘은 ‘때우는’ 식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장은 바쁘고 귀찮으니까 ‘때우는’ 식사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는 ‘건강’을 ‘편리함’과 바꾸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때우는’ 식사가 익숙한 우리 세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경험하는 식사는 어떠할까? 배달음식과 간편식이 우리 식탁을 차지해 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배달음식과 간편식은 태생적으로 ‘잘 차려진’ 식사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제대로 된 식사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다양한 음식을 접해보지 못한 아이들의 식생활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씨리얼과 우유가 아이의 매일의 한 끼 식사를 대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생겼고, 우리 학생들이 학생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는 기준은 오로지 ‘맛있는’ 식단이다. 이제 우리 학생들에게는 ‘돌봄’, ‘교육’, ‘위로’, ‘존엄성’ 등의 의미를 갖는 식사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다.

 

이 시점에 우리 학교가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여유롭지 않은 식단가로 어려움이 많겠지만, ‘천원의 아침밥’이 학생들에게 식사가 가지는 ‘돌봄’, ‘교육’, ‘위로’, ‘존엄성’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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