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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그들은 살았고, 생각했고, 싸웠노라「오펜하이머」

등록일 2023년11월01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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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질문을 들어본 기억이 있다. “철학 논증에서 제시되는 상황들은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요? 실생활에서 발생할 일이 거의 없잖아요” 그때 나의 대답은 “그 논증을 위한 질문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였는데, 아마 시간도 좀 더 흐르고 이 영화를 본 지금이라면 더 괜찮은 답을 주었으리라고 예상한다. 생각보다 우리 주변의 일들은 좀처럼 상식적이고 평범한 상황들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배웠기 때문이다. 흔히들 떠올리기에 선과 악, 득과 실로 양분되는 선택이나 사건은 오히려 적은 경우가 많다. 약 80억 개의 인자들이 상호작용하는 사회 속에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바뀌는 맥락까지 고려한다면 사건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인간은 희박할 것이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이라는 거대한 사건에서, 그 소용돌이의 중심이었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는 더더욱. 총성과 폭탄으로부터는 안전했지만, 그 어디보다 치열했던 전장으로 들어가 보자.

 

Si Vis Pacem, Para Bellum(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불안정했던 대학생 오펜하이머를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한다. 지도교수였던 ‘블래킷’과의 불화, 적성에 맞지 않는 실험물리학 공부 탓에 지독한 향수병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지도교수를 독살하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닐스 보어의 권유로 괴팅겐 대학교로 학적을 옮긴 후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고, 이는 오펜하이머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라는 평가를 듣게 되는 전환점이 된다. 그러던 와중 독일에서 핵분열 현상이 발견되었고, 1년 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미 육군 대령 ‘레슬리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를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하고 뉴멕시코주의 로스앨러모스에 새로 마을과 연구소를 지어 핵실험을 성공시키게 된다.

 

차악과 차선 사이에서

그 이후, 오펜하이머는 핵확산 방지를 위해서 수소폭탄 개발을 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맨해튼 계획에서 같이 일했던 ‘에드워드 텔러’와 갈라서게 된다. 이런 태도의 변화는 미국 공산당과 교류했던 그의 과거와 맞물리며 미 정부의 의심으로 이어진다. 이를 눈여겨보던 원자력 위원회의 ‘루이스 스트로스’는 과거에 망신당한 일로 그에게 앙심을 품고 앞서 말한 정부의 의심을 이용해 오펜하이머에게 공산주의자이자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워 에너지 기밀에 대한 접근 허가를 취소시키려 판을 짜게 된다. 그리고 그의 전략대로, 청문회 결과 오펜하이머는 일부 위험 인사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보안인가 갱신을 허가받지 못한다.

 

시기와 질투의 총구가 향한 곳

약 5년이 흐른 뒤, 스트로스 본인도 상무부 장관 임명 청문회에 임하게 된다. 청문회는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으나, 증인 명단에 밝혀지지 않은 익명의 과학자가 증인으로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는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과거 오펜하이머를 개인적인 원한으로 직권을 남용하여 누명 씌운 것에 대한 증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불안함은 곧 현실로 이어졌고, 데이비드 힐이라는 과학자는 오펜하이머와 악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로스를 고발하는 증언을 해서 결국 그를 낙마시키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도 곱씹어볼 명대사

▶“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파멸시킬 힘을 준 사람이야. 세상은 아직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말이지”: 오펜하이머, 더 나아가 근현대 과학자들에게 끝없이 제기되는 질문과 고민거리로써 영화에서 묻는다. 우리는 정말 우리의 행동의 결과를 이들처럼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 계산식을 보여줬을 때, 우리는 전 세계를 파괴할 연쇄반응이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내 생각엔 그게 시작된 것 같아”: 위 질문에 대한 오펜하이머의 생각을 보여주는 대사이다. 그가 이룩한 평화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이면에 묻혀있는 수많은 무기이기에.

 

 

이우송 기자 baker221b@g.shin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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