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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신경끄기 기술 - 최명희 교수(아동보육과)

등록일 2024년04월26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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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육과 최명희 교수님

살다 보면 막막할 때가 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에 갇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느낌이다. 멀리 보면 아득하고 발끝만 보일 뿐이다. 이럴 때는 발끝에만 의지하며 반걸음씩 걷다 보면 어느새 안개 속을 벗어나게 되는데 말이다. 가마득한 안개 속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른다. 나도 그런 적이 꽤 있다. 성인기의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도, 교육과 행정을 다 해내야 하는 교수로서의 삶에서도 걸어갈 방향이 선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 때로는 밖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느라 혼자 앓기도 하고, 실수를 털어내지 못해 지나간 시간 속에서 서성이기도 한다.

 

그럴 때 뜬금없이 콩쥐를 떠올린다. 정말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어린 콩쥐는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계모의 정서학대와 보상 없는 노동을 어떻게 참아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콩쥐는 계모에게 신경을 꺼버리는 기술을 사용했다. 계모에게 절망하고 분노하는 대신 소를 쓰다듬고 두꺼비에게 연못을 파주고 참새에게 낟알을 먹이는 데 신경을 쓰며 소소한 기쁨을 발견했다. 그러자 위기의 순간에 소소했던 그들이 위대한 힘을 발휘했다. 김매고, 물 길고, 타작해놓아야 하는 불가항력을 그들의 합력으로 거뜬히 이겨냈다. 황소가 콩밭의 풀을 모조리 뜯어 먹어주고, 두꺼비가 깨진 항아리의 밑을 막아주고, 참새가 낟알을 쪼아 까주는 극적인 반전을 통해 결국에는 콩쥐가 최종 승자가 된다. 콩쥐가 번번이 계모에게 복수의 계략을 짜느라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면 이 반전 스토리가 가능했을까?

 

마크 맨슨(Mark Manson)은 <신경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자기 앞에 닥친 고난이 생긴다면 ‘다름’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는 일로 넘기라고 했다. 더는 신경 쓰기를 멈추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신경 쓸 일을 찾으라고 한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이 아닌,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향해 “꺼져”라고 말한다. 진짜로 중요한 것에 쓰기 위한 신경을 따로 남겨놓는다.

인생이 참 그렇다. 콩쥐의 반전 스토리는 악착같은 복수혈전이 아니라 고난에 신경을 끈 ‘발상의 전환’ 덕분이었다. 그 고난이 나를 다 삼켜버리기 전에 달아나 살아남은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바꿔버린 것이다. 황소, 두꺼비, 참새와의 관계에서 기쁨을 발견하며 살아온 콩쥐의 정신의 힘, 회복탄력성의 저력이다. 인생의 역경을 이겨내는 비결은 역경을 정면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콩쥐처럼 슬쩍 비켜 가는 것이다. 다른 방향의 기쁨을 찾아내어 희망의 불빛으로 정신을 밝히는 것이 결국 시련을 이기는 내면의 힘이 된다.

구전 설화까지 끄집어내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계모의 학대 버금가는 시련이 있을 때가 있다. 학생들과 상담하다 보면 저마다 크고 작은, 그러나 아픔의 크기는 같은 시련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녹록지 않은 취업 현실로 여태까지 입시 치르고 3년 공부했던 모든 과정을 후회하기도 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서 다른 친구들은 다 잘 사는데 혼자만 낙오되는 것 같다고도 한다. 옭아맨 듯 갇혀서 후회를 털어내지 못하고 자책과 뒤엉켜있다.

 

그때는 괴로움의 실체에 잠시 신경을 끄라고 말해준다. 온 힘으로 맞서 싸우려고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러라고 해”하고 신경을 꺼버리고 그 대신 다른 좋은 대안을 떠올리고, 오히려 잘된 구석을 찾으며, 다른 좋은 사람과 소통하며 마음을 밝게 해야 한다. 밝음만이 어둠을 걷어낼 수 있다. 밝은 마음이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패러디해서 우겨보려는 건 아니다. 청춘들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플 때도 있으니 평소에 면역을 길러두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 겪는 시련이 있다면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꼭 믿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비로소 알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두드리고 걷어차도 열리지 않던 문이 작은 열쇠로 비로소 쉽게 열린다는 것을.

 

‘마중지봉(麻中之蓬)’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삼밭 속의 쑥’, 곧은 삼밭 속에서 자란 쑥은 삼을 닮아 덩달아 곧게 자란다는 뜻이다. 맑고 밝은 사람과 가까이하면 그 기운으로 자연히 맑고 밝은 삶을 살게 된다. 당신도 그러면 된다. 지금 혹시 당신의 선한 의도를 왜곡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매몰되어 고통을 겪지 말고 다른 쪽에 있는 밝은 사람을 찾아보면 된다. 뾰족한 말을 들은 날은 둥그런 말을 쓰는 사람으로부터 위안을 받아보려고 애써보자. 누군가의 차가운 충고로 공허해졌다면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 감사의 말을 되돌려 받아보자. 힘들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신경을 딱 꺼버리고, 씩 웃음이 나는 소소한 일을 떠올리며 긍정적인 감정의 기억을 가져와 보자. 그게 콩쥐의 지혜로부터 배우는 정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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