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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어찌하오리까?-이길영 교수(한국외국어대 영어교육학과)

등록일 2024년05월29일 09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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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 이길영 교수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는 우리의 인생에 대하여, 또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울림이 있는 시이다. 그 전반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 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후략)

 

매년 신입생들에게 이 시를 소개하면서, 대학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친구들의 삶의 경험과 무게가 실로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인식하게 한다. 그 친구의 향후 일생에 거쳐 쌓게 될 무한한 잠재력을 기대하게 하며, 그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보라고 신입생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언젠가 위 정현종의 시를 통하여 외국어 학습의 그 무한한 잠재력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그 시를 모방하여 다음과 같이 각색해보았다.

 

외국어를 안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 언어는/그 과거와 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민족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인생 80년에도 정현종 시인은 위대한 서사가 있음을 보았는데, 하물며 수백 년, 수천 년을 켜켜이 쌓아온 외국어임에랴...

 

미국 유학 중에 첫 일 년을 마치고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라는 나라에서 단기 선교 훈련을 6주간 받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한 선교사의 선교센터에서 머물면서 그 지역의 토착어인 만딩가어를 몇 단어 알게 되었다. 아침인사로 “Sumole?” 하면 응답을 “Ibije”로 이야기하는데, 이 대화의 의미는 ‘Are they there?’ 그리고 ‘Yes, they are there’이다. 서부 아프리카는 17~18세기에 성행했던 노예무역 시대 때 흑인이 잡혀간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 말의 의미는 ‘밤새 그들이 노예로 끌려가지 않고 잘 있는지요?’, ‘네, 그들이 그곳에 잘 있어요’가 된다. 실로 가슴 아픈 역사적 배경이 이 인사말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인데, 우리 한국어에도 아침 인사로 ‘아침 진지 드셨습니까?’하며 묻던 시절이 있음이 연상되었다. 어릴 때 시골에 가면 아침에 어른들이 이렇게 인사 나누는 모습을 보았는데, 나라가 혼란하여 서로 싸움하던 그 혼돈의 시대에 끼니를 서로 걱정하던 애틋한 인사 습관이었다.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그저 어떤 한 형태의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것과는 다르다.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위 감비아에서 경험했던 만딩가어의 가슴 아픈 경우처럼,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오랜 스토리와 애환이 담겨있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같이 묻어있음을 알아 우리의 지식과 지혜의 확장성이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외국어이건만, 특히 지식과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좋은 시기인 젊은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외국어교육 정책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우선 우리나라는 영어 이외 다른 외국어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그 중요성을 알지만 다른 일반과목보다 덜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은 아닌가? 명목상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영어 이외에 외국어로 8개국 언어(중국어, 독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일본어, 아랍어, 베트남어)가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외국어는 독립교과가 아니라 ‘생활·교양’ 영역으로 묶여있어 굳이 이를 개설하지 않아도 되니 학교에 따라서 외국어 과목이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외국어 과목이 대입 시험에도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으니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리 만무하다.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으나 한반도 그것도 반쪽인 터전에 사는 우리들에게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은 필수 불가결이며 생존의 문제이지만, 외국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안타깝다. 영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세계어’의 반열에 들어서 그 위상이 절대적이라 해도 여전히 다른 외국어에 대한 관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지금의 영어의 위상은 세계의 질서 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변적일 수 있다. 언어의 위상을 사용자 수, 서로의 네트워크 및 발전, 그리고 경제적 측면에서 예측하는 Engco모델에 따르면, 2050년의 언어 위상은 중국어, 스페인어, 영어, 인도어, 아랍어 순이다. 이런 변화하는 세상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외국어에 대한 입장은 좀 더 적극적으로 선회되어야 한다.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인류의 지혜의 총합은 어느 한 언어 안에 담겨질 수 없고, 또 어느 한 일개 언어가 인류의 이해력의 모든 양상을 표현할 수 없다’고 설파한 적이 있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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