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아.
여태 나는 사랑이 뭔지 몰랐다. 남들은 다 하니 비슷한 수순을 밟기는 했으나 ‘사랑’이라 정의함에 있어서는 항상 망설여졌다. 그렇게 스물여덟 해를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너와 헤어지는 순간이 못내 아쉬웠다. 원체 사람을 좋아하는 나라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돌이켜보니 아니었다. 네 웃음을 좀 더 오래 보고 싶었다. 사랑이란 단순히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일 거라고만 지레짐작했는데, 꼭 하나로 정형화할 수는 없단 걸 너를 통해 깨달았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형태로 사랑을 하고 사는 거였다.
혹자는 사랑의 조건으로 ‘설렘’을 든다. 또 다른 누군가는 ‘외형’을, 내지는 ‘금전’ 같은 것을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에겐 무엇이 사랑의 조건으로 작용할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었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대체로 잠들기 힘들어한다. 보여지는 부분을 의식하는 탓이다. 그런데 네 품에 안기면 금방 잠들고 만다. 혹여 추레한 몰골로 보일까 걱정되지도 않고, 자다 깨서 부스스한 반곱슬 머리카락을 보이는 것도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를 알고 지낸 세월은 정돈되지 않은 모양새를 보여도 괜찮을 만큼의 두터운 신뢰를 쌓아주었다. 나도 몰랐던 내 사랑의 조건은 ‘곁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을 정도의 편안함’이었던 모양이다.
너는 스스로가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는 너의 올바름에 끌렸다. 나쁘게 살기는 쉬워도 바르게 살기란 어려운 세상인 걸 아는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너는 내가 욕심껏 사는 모습이 좋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종종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네 말을 떠올린다. 너는 내가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영원이니 운명이니 하는 거창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존재하는지부터가 의문이라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실 천부적으로 애교가 적은 사람이라 좀 열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소망하는 바는 있다. 나는 네가 내 마지막 사람이자, 마지막 사랑이길 바란다. 어쩌면 첫사랑이라고 칭해도 좋을 내 사랑아. 가을날 밤, 너를 떠올리며 편지를 쓴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