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아시아 여성 최초이자 우리나라 최초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은 책에서 어떤 단어와 어휘를 사용할까? 본 기자가 스무살 초반 채식을 하던 중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텁텁한 녹즙같던 글들을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읽었다.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리며 의자에 앉은 채 곰팡이같은 이끼가 피부에 피어나더니, 건조한 듯 쩍쩍 갈라지며 피부에 나무 껍질이 생기고 땅에 뿌리를 내리더니 가지가 뻗어나가는, 나무가 되어버리는 경험을 했다. 깊은 겨울 속 이불 동굴을 만들고 한강의 어휘에 잠겨보자.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소설 「소년이 온다」의 일부로 눈부시도록 깨끗한 순간의 광휘는 양심과도 같다 말한다. 여기서 ‘광휘’란 환하고 아름답게 눈이 부시는 것. 또는 그 빛을 뜻한다. 광휘는 누구에게나 있다. 아무리 외면하고 모른 척해봐도 변하지 않을 마음 속 외침이 우리에겐 있다.
“눈에 덮여 둥글고 부슬부슬한 윤곽선을 새로 얻은 나무 밑동들이 박명 속에 희미하게 빛났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일부이다. ‘박명’이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얼마 동안 주위가 희미하게 밝은 상태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겨울을 지나고 있다. 우리에게 한동안 눈은 조금 지겨울지도 모르겠지만 이 문장 속, 박명이 깔린 세상의 눈 덮인 나무 밑동을 떠올리면 이내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도 같다. 이 문장 외에도 약 6번 정도 박명이란 단어가 책에 등장한다.
“어렴풋한 웃음이거나 인사인지, 그저 무연한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건너다보다 몸을 돌린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일부이다. 여기서 ‘무연’이란 ‘크게 낙심하여 허탈해하거나 멍하다' 라는 뜻의 형용사이다. 무연한 표정 속에서 흐릿하게 웃음인지 인사인지 모를 것을 발견하는 작품 속 인물의 시점을 떠올리게 된다.
“혼곤해지는 의식 속에 얼굴들이 떠오른다. 알지 못하는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먼 육지에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황홀하게 선명하다.”
마찬가지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일부로, ‘혼곤’이란 ‘정신이 흐릿하고 고달픔’ 이라는 뜻이다. 한강의 소설 속 이렇게 낯선 단어들을 발견할 때마다 국어사전에 검색해가며 뜻을 찾아보고, 해당 문장을 다시 꾹꾹 눈으로 찍어가며 읽다보면 소설 속 이미지가 눈에 환하다. 이는 작가가 전달하려는 이미지를 더 선명하게 읽는 방법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인선의 목소리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두터운 눈의 격벽에서 스며 나온 빛이 음음하게 내 얼굴을 밝혔다.”
마지막 문장 역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일부이다. 문장 속 ‘격벽’이란 ‘벽을 사이에 둠. 혹은 공간을 나누기 위해 만든 벽’ 정도로 해석되고, ‘음음하다’란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흐리다, 수목이 우거져 깊고 어둡다’는 뜻이 있다. 겨울이 오자 음음하게 어둠이 깔린 창밖 탓에 눈 뜨기가 쉽지 않겠지만, 마침내 올 봄을 기다리며 한강의 책을 음미하자.
신서현 기자 mareavium@g.shing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