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수도통합병원 황예인 의무기록사
대학 시절, 나는 전공 수업을 그저 ‘졸업을 위한 준비’쯤으로 여겼다. 과제와 시험은 게임의 퀘스트처럼 처리하기 바빴고, 교수님이 강조하시던 개념들과 실무 경험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취업을 하고 실무에 직면해보니, 그때 배운 개념들과 지식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업무처리 역량과 문제해결의 관점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의무기록 관리, 보건의료와 병원 체계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대학에서 쌓아 둔 기본기가 필수적이었다. 교과서 속에 갇혀 있는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무에서 능숙하게 사용해야 하는 데이터 서식과 표준화, 의무기록의 완결도 점검, 의료정보와 의료행정 체계의 틀이 환자의 안전과 의료 서비스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현실로 깨달아졌다. 돌이켜보면 대학에서의 학습은 단순한 지식축적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보건의료정보관리사의 역량’을 키우며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었다.
업무 현장에서는 학교와 달리 정답이 없고, 상황은 계속 변하고 속도도 훨씬 빠르다. 현재 의료정보체계 분야는 디지털 기술의 혁신과 환자 중심의 의료 환경 변화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처음 업무를 시작했을 때는 낯선 프로그램과 용어, 규정들 사이에서 막막함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낯선 환경과 새로운 업무의 긴장감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만들어 준 건 대학 시절의 학과 대표 활동과 조교 경험이었다. 학과 대표로서 수업 일정과 공지 사항을 정리하고, 교수님과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의견을 조율하던 과정은 실무에서 필요한 소통 능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또한 조교로 활동하며 과제 기준을 정리하고, 수업 준비를 돕고, 문제 상황을 즉각 해결하던 경험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하는 ‘배우는 속도’를 길러 주었다. 실무에서는 누구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모르면 물어보고, 기록하고, 다시 도전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갖출 수 있었던 건 대학에서 이미 작은 조직을 운영하며 협업의 흐름을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전공 지식은 물론이고, 사람과 시스템을 함께 이해하는 능력은 대학생활의 경험들로 길러진 것이었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대학 시절의 작은 도전들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다. 대학교 홍보대사에 지원하며 스스로를 사람들 앞에 세웠던 경험, 국가고시 재수를 결정하며 흔들리는 자신감을 붙잡았던 순간, 전문학사 취득 후 안주하지 않고 일반학사 취득까지 이어가며 배움의 폭을 넓히려 했던 선택, 그 모든 과정이 지금의 업무 태도와 문제를 대하는 방식에 깊게 스며있다. 홍보대사 활동을 준비하며 쌓았던 기획력과 책임감은 실무에서의 소통 능력과 성실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국가고시 재수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지나며 길러진 끈기와 자기관리 능력은 예상치 못한 변화나 압박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힘이 되었다. 또한 학사 과정을 확장해 나가며 스스로 배움의 방향을 만들고 계획했던 경험은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흡수해야 하는 실무 환경에서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에는 단순한 선택이라 여겼지만, 결국 그 모든 경험들이 삶의 태도와 업무습관을 형성하며 실무자의 기본기를 탄탄히 세워 준 셈이다.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꾸준히, 조금씩 성장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대학에서의 배움이 단순한 암기와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이 개념이 현장에서 어떻게 쓰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때, 성장하는 사고력과 주체성은 실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기초적인 문서작성 능력과 소통 능력, 데이터 이해 능력은 의료기관 어디에서든 필수이며, 엑셀·파워포인트와 같은 문서 작업 프로그램의 기본 기능을 익히고 논리적으로 문서를 구성하는 습관은 실무에서 즉시 활용되는 역량이다. 무엇보다 모르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는 어떤 경력보다 값진 역량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울수록 신입직원을 뽑는 폭은 더 좁아진다. 그래서 작은 경험이라도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도전하여 경험을 쌓는 과정이 결국 스스로의 경쟁력이 된다. 전공 자격증뿐 아니라 어학 자격증,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 그리고 자기계발을 위한 도전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대학 시절은 단순한 학습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의 시간이다. 지금 쌓아가는 경험 하나하나가 훗날 실무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후배들도 대학 생활을 통해 크게 성장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언젠가 같은 의료현장에서 동료로 함께 일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