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강아지가 된다면, 아마 가장 먼저 옷에 대한 생각들을 잊게 될 것 같다. 패션디자인과에 다니는 나는 늘 사람의 몸을 기준으로 옷에 대해 생각해왔다. 어떤 실루엣이 예쁜지, 어떤 원단이 계절에 맞는지, 유행은 어디로 흐르는지. 하지만 강아지가 된 나는 더 이상 옷을 고르지 않는다. 대신 햇빛이 따뜻한지, 바닥이 차가운지와 같은 감각에 먼저 반응할 것이다. 몸으로 느끼는 온도와 촉감이 옷보다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또, 강아지가 된 나는 거울을 덜 볼 것 같다. 사람일 때의 나는 디자인 발표 전마다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정리했다. 하지만 강아지는 누군가의 평가를 예상하며 하루를 시하지 않는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몸을 옮기고, 좋으면 꼬리를 흔들고, 싫으면 물러난다. 그 단순함이 부럽다. 패션이란 결국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인데, 강아지는 이미 표현 그 자체로 존재한다. 산책을 나가면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것 같다. 사람일 때는 건물의 외관이나 쇼윈도의 디스플레이를 보았다면, 강아지가 된 나는 바닥에 남은 냄새와 발자국을 읽을 것이다. 누가 지나갔는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그 흔적만으로도 이야기를 상상한다. 패션디자인을 하며 쌓아온 관찰력은 이때 다른 방식으로 쓰일지도 모른다. 눈이 아니라 감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삶이란 어떨까. 햇빛 아래에서 반짝이는 털의 결,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 움직일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주름. 강아지의 몸은 이미 하나의 완성된 디자인이다. 내가 강아지가 된다면, 세상은 단순해지지만 얕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진짜 중요한 감각만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솔직한 디자이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옷을 만들며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강아지처럼 이유 없이 좋아하고, 계산 없이 반응하는 태도를 잊지 않으려 한다. 그 감각이 나를 버티게 해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