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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몬드에서 만난 열정 - 세무회계과 이기호 교수

등록일 2013년07월31일 10시4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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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회계과 이기호 교수
 
이번 학기 나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기업이란 과목을 강의한다. 지난주에는 현대그룹 창설자인 정주영 회장에 대하여 강의했다. 정 회장은 16살 때부터 18살까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네 차례의 가출을 했다. 그는 직장을 얻기 위하여 함경도와 서울로 향했고, 그를 찾아온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때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가 만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에 머물며 농사를 지었다면 한국의 기업사()는 어찌 변했을까? 강의를 하며 학교 교육, 그 속에 몸담고 있는 나를 생각했다. 더불어 2006년 가을 학기,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서 만난 호일(J.B.Hoyle) 교수를 떠올린다.

당시 나는 버지니아 주립 대학교(VCU)에 초빙교수로 가 있었다. 대학이 있는 리치몬드는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요충지였으며, 현재 인구 100만 정도의 아름다운 도시다. 수도 워싱턴에서 차로 2시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초대 대통령 워싱톤의 고향이기도 하다. 외국에 유학한 적이 없는 나는 미국 교수들의 강의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VCU 회계학과 교수들에게 부탁하여 한 달씩 혹은 며칠씩 청강을 하였다.

그렇게 지내다 나는 버지니아주 회계사회에서 주최하는 고등학교 교사들의 연수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회계, 마케팅, 전산 과목 등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위한 세미나였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리치몬드 대학 회계학과의 호일 교수를 만났다. 그는 거기서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위하여 교수법 특강을 해주었다.

며칠에 걸쳐 그가 나눠준 교수법 개선을 위한 단상(Tips and Thoughts on Improving The Teaching Process)이란 소책자를 읽었다. 그리고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바로 장문의 답장이 왔다. 청강을 허락할뿐더러 점심을 초대하겠다는 제안과 함께. 나중에 몇 번 더 메일을 보냈는데, 그 때마다 답장이 바로 왔다. 그는 거의 매 시간 메일을 체크하며,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뒤 그의 강의에 맞추어 리치몬드 대학으로 갔다. 아름다운 교정을 지나 그의 연구실로 들어서니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이하게도 연구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학생들이 계속 들어와 그가 가르치는 과목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그는 친절히 답해주었다. 그것이 그가 항상 문을 열고 있는 이유였다.

우리는 강의실로 함께 갔다. 보통 한국의 회계학 교육은 교수들의 일방적인 강의가 주종을 이룬다. 호일 교수를 만나기 전에 청강했던 다른 교수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에 비하여 그는 학생들에게 계속 질문을 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의 강의를 진행했다. 특별한 기자재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인 강의 분위기도 활기차고 진지했다. 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은 그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위하여 줄을 길게 늘어섰다. 그는 강의할 때와 같은 열정으로 펜을 놓지 않고 진지하게 답해 주었다. 긴 질문이 끝나자 우리는 그의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거기서 우리는 한국과 미국의 교육 제도, 그 대학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 호일 교수 자신의 교육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와 헤어져 걸어 나왔던 리치몬드 대학 교정과 맑고 약간 쌀쌀한 초겨울의 상쾌함을 잊을 수 없다.

이제 나는 학생들을 가르친 지 30년이 가까이 된다.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하여 교육 환경도 크게 바뀌었다. 지난 주 금요일도 교수들을 상대로 하는 스마트폰과 그를 이용한 교수법 강의가 있었다. 이제 그런 환경변화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지만, 나의 생각에 묻혀 학생들의 변화된 모습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곤 한다. 그리고 무엇이 참된 교육이고, 어떤 것이 내가 학생들과 함께 일구어낼 의미 있는 인간상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호일 교수를 생각한다. 그의 친절하고 쉬운 강의를 통하여 그 대학 학생들은 회계학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그의 열정을 나눠 갖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교육의 본질은 학생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향해 함께 나가는 열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호일 교수와의 짧은 만남은 교육을 마무리해가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시 그의 열정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대해 본다. 그의 교수법을 한국어로 번역하겠다는 약속도 지킬 수 있길 소망한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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