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미디어과 조현재 교수
현대사회는 모든 노동이 돈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노동은 돈으로 환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또한 이웃 간에 도움의 손길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나누기도 했고 그것이 오히려 삶의 기쁨이 되기도 했다.
필자는 지난 1년간 미국 아이오와주 애임즈라는 도시에 있는 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 연수를 했다. 이곳에서 노동을 돈으로 주고 사야 하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들을 경험하며 큰 감동을 받았다. 애임즈에 도착하는 날, 필자를 초청해 주신 미국 교수님은 다른 교수님과 함께 미니 밴을 가지고 공항에 나와, 우리 가족이 가지고 간 짐들을 우리가 머무르게 될 아파트까지 직접 옮겨주는 친절을 베풀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며칠 후에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분이 자기 이웃이 쓰지 않게 된 가구가 있다며 트럭에 직접 침대와 옷장 등 가구들을 실어 옮겨주었다. 한국에서는 가구를 마련할 때 스스로 돌아보며 알아보고 배달 비용도 지불해야 했었고 출국하는 날도 콜밴을 불러 비용을 지불하고 공항까지 가야 했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미국에 도착해서 경험한 무조건적인 친절은 조금은 낯설었다.
그런데 이런 무료 노동(?)은 일상생활에만 그치지 않았다. 연수를 하며 세 번의 청소년 대상 워크숍에 함께 참여했는데, 전공별 워크숍은 대학 주최로 지역 청소년을 위해 매년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참가하는 청소년들의 간식비와 실비 외에는 모두 무료였고, 교수들과 학생들도 기꺼이 시간을 내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지역의 초중고 학생들은 비싼 사교육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대학에서 실비만 받으며 진행하는 방과 후 수업들이나 단기 캠프들을 활용해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대학생과 교수들의 지식의 지역 환원은 대학생들에게는 실습의 기회가 되었고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의 재능을 다양하게 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사교육에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하는 우리 사회와 비교하면, 지식을 통한 재능기부의 선순환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선순환은 ‘섬김’에 기초한다. 무한경쟁만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섬김은 어느새 낯선 단어가 되었다. 그러나 섬김은 받는 사람에게는 감동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행복이라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사실 우리나라 전통에도 이웃끼리 노동을 나누는 품앗이 등 아름다운 섬김의 전통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산업화가 진행된 이후 모든 노동을 돈으로 계산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도 기업에서 재능기부를 통해 몇 번의 어린이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이런 기회들이 있을 때 우리 학생들도 같이 참여해 본다면, 전공에 대한 보람과 애정이 더 커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에도 재능기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고, 자원봉사자들의 재능을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PEN IS YOUR FAN은 한 유학준비생이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연필과 펜을 모아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보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지인들과 시작한 일인데, 지금까지 17개국 13,520명의 아이들에게 86,012 자루의 펜이 전달되었다고 한다.
내 노력 없이도 내가 태어났듯이 재능이란 나에게 거저 주어진 능력이며 배움을 통해 가꿔진 능력이다. 이러한 재능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으로 돕고 섬기며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각자에게 다르게 주셨다고 생각한다. 나의 노동이 얼마짜리인가를 계산하기에 앞서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기쁨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고, 전공이나 직업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재능기부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웃을 돕는 기부는 돈이 아닌 나의 작은 재능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