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4년 10월 17일, 23일
▶장소: 복지관 총동문회실, 신문방송국주간실
▶참여: 구상태 교수(사진영상미디어과, 1979년 부임)
이용문 동문(방사선과 77학번, 2014년도 총동문회장 취임)
최갑수 소장(축산과 75학번, 학생서비스센터 소장)
▶진행·정리: 서민지 기자, 임예슬 기자
▶사진: 임예슬 기자, 안성규 수습기자
우리 대학교가 어느덧 개교 40주년을 맞이했다. 5개 과 학생 200명에서 출발한 신구는 현재 34개 학과 및 전공에 학생 수 7,000여 명의 대학으로 성장했으며, 매년 3,000여 명의 신입생이 입학하고 총 8만 여 동문을 배출한 직업교육의 최고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신구대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온 교수, 신구대학 출신 직원, 동문과 함께 신구대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봤다. <편집자주>
Q. 신구대에 어떻게 부임(입학)하게 됐는지 말씀해 주세요.
구상태 교수 ‘새한칼라’라는 필름 제조회사에서 근무하다가 1979년, 설립자분의 소개로 28살에 신구대학교에 부임하게 됐습니다.
최갑수 소장 과거 축산과(현 자원동물과)와 조경원예과(현 환경조경과, 원예디자인과)는 등록금 전액 면제를 조건으로 근로장학생을 한 명씩 선발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스스로 살아가고자 1975년 근로장학생으로 입학해 농장에서 숙식하며 학교에 다녔죠. 그리고 졸업 후 조교로 근무하다 보니 신구대에서 평생을 보내게 됐어요.
이용문 동문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 다녔는데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고 많이 방황했어요. 그러던 중 셋째 형님의 조언으로 신구대학교 방사선과에 다시 입학하게 됐습니다.
Q. 교수님(동문님)께서 처음 부임(입학)하셨을 무렵의 신구대는 어땠나요?
이용문 동문 그때 시설은 아주 열악했죠. 특히 비 오는 날은 발목까지 수렁에 빠지면서 학교를 다녔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군대를 갔다 오니 이종익 박사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 환경이 싹 바뀌었더라고요. 그래서 '이야, 3년 만에 이렇게 발전할 수 있구나'하고 생각을 했었죠.
구상태 교수 제가 막 부임했을 때는 지금의 동관과 서관, 인쇄동만 있었습니다. 학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있었고 주변은 건물도 하나 없이 전부 논밭이었어요.
최갑수 소장 그때 우리 학교에 중산층 자녀들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공부와 취직에 매달리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단합도 무척 잘 돼서 체육대회나 축구 시합이 있으면 다들 몰려다니고, 무슨 일이 있으면 다른 과라도 무조건 가서 편을 들어주곤 했습니다.
Q. 우리 대학교가 많은 발전을 이뤘는데, 그 중 어떤 부분이 가장 의미 있는 발전이라고 생각하세요?
구상태 교수 과거 전문대학으로서 직업교육의 선구자였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자리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또 다양한 학과들이 많이 증설되고 교육과정이 잘 돼 있어 수준 높은 직업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갑수 소장 앞서 말씀하신 교육과정, 다양한 학과, 취업률도 의미 있지만 제가 볼 때는 시설·환경이 가장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과연 대학의 면모를 갖췄구나 싶습니다.
이용문 동문 제 생각은 조금 다른데요, 지금은 너무 풍요로워진 것 같아요. 좋은 점일 수도 있지만 풍요로움 속에 빈곤이라고 할까요? 그 풍요로움을 활용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Q. 요즘 대학생들의 화두는 단연 취업인데, 70년대 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었나요?
구상태 교수 제가 부임한 시기가 10.26사건(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이 난 직후라 시위운동이 활발했습니다. 시국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중앙극장(현 종합시장)까지 가서 시위운동을 하고, 경찰과 충돌하기도 하고 그랬죠.
최갑수 소장 전국적으로 사회 분위기가 그랬지만, 시위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은 졸업과 가업을 잇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어요.
이용문 동문 그때는 당장에 졸업 후를 생각하며 생계에 집착하는 학교생활을 했고, 미래에 어떤 직업으로 뭘 할 수 있을지를 학교에서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Q. 신구대에서 근무(공부)하시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구상태 교수 부모가 자식 잘되는 게 제일 좋듯이, 우리 과 졸업생들이 사진계로 나가서 자리 잡고, 큰 대회에서 이름을 날리는 게 제일 보람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갑수 소장 저는 체전을 보면서 ‘우리 때도 저랬는데, 저것만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뭉클해져요.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뭉쳐 끈끈한 정을 나누고, 제대로 된 젊음을 발산하는 좋은 기회가 바로 체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용문 동문 전 아침마다 등굣길에서 작업복을 입고 일꾼들과 어울리며 학교를 만들려고 했던 이종익 박사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그 노력이 정말 대단했죠. 그리고 그때 교수님들과 형제같이 지내며 함께 과를 만들었던 추억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반면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구상태 교수 학생들이 경력에서 신구대를 빼버리는 게 가장 서운해요. 그런 학생을 혼을 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2년제라는 콤플렉스가 이해가 가고 마음이 아프죠. 이제는 학교가 점점 4년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그런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갑수 소장 원래는 교육자가 꿈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근로장학생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꿈을 품고 열심히 공부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이용문 동문 다른 과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었으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됐을 텐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아쉽습니다. 후배들은 다양한 과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도 어울림의 자리를 마련해 주면 학생들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고 훗날 학교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Q. 신구대가 앞으로 어떤 면에서 더 노력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구상태 교수 전문대나 4년제나 최대 이슈가 취업이죠. 취업률을 높이고 훌륭한 인재를 많이 길러내기 위해서는 보수적이고 안주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타파해야 해요. 직업의 변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고, 이러한 세태에 따라서 교육목표와 학과들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갑수 소장 학생들의 자격증 취득도 중요하지만 인성 교육에 집중해야 해요. 대부분의 과가 3년제가 됐으니, 1학년 때는 전공보다는 교양 과목을 더 넣거나 인문학 인사를 초청하는 기회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학생들이 삶에 대해 배우고 장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훗날 사회에서 찾는 인재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용문 동문 지금 34개 과, 전공에 학생 수가 6천 명이 넘는데 이렇게 많은 학생을 수용할 만큼 학교가 크지 않아요. 분교를 세우거나 4년제 대학으로 탈바꿈하고, 더 나아가서는 성남시의 대표 브랜드가 되는 학교가 됐으면 합니다.
Q. 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하며 꼭 해보길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구상태 교수 많은 학생이 자신의 꿈을 접고 남에게 떠밀려서 삽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 일을 찾아내면 좋겠습니다.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고 피가 끓는 그런 일을 해야 후회 없이 살 수 있어요.
최갑수 소장 일단 과에 온 이상은 무조건 전공 공부에 충실히 하세요. 그리고 시간을 아껴 책을 보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여러 경험을 쌓다 보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용문 동문 젊은 나이는 절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정말 좋은 시기에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학습입니다. 젊을 때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 시기를 놓쳐요. 대학생이라면 전공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본인의 개성을 살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빨리 파악하고 자기계발을 해서 브랜드화 시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