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과 서윤희 교수
작년 초 신구대학교에 부임해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했던 첫 상담에서 만났던 학생이 기억난다. 유아교육과에 진학하였지만 학과 공부를 하면서 점점 더 적성에 잘 안 맞는 것 같고 잘 해낼 자신이 없다며, 상담 내내 계속 눈물을 흘렸던 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난감해하다가 그저 잘 경청해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던 기억… 학생들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막연하게 나의 스무 살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공감해 주기도 하고, 같은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좀 더 나은 혜안을 주고자 조언을 해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유아교육’과 ‘나’의 불협화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권해 주신 ‘딥스’라는 책을 읽고, 유아기 동안 갖게 되는 경험의 영향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유아교육과에 진학하였다. 내가 꿈꾸던 전공이었지만 전공하는 동안 유아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선입견과 만나면서 유아교육과 나의 첫 불협화음이 시작되었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여성성과 돌봄의 역할이 강조된 유아교사의 이미지, 이론적 지식 없이 유희적인 활동이 전부라고 생각되는 유아교육에 대한 편견 등이 가끔씩 나를 괴롭혔다.
특히 3학년 2학기 첫 실습은 앞으로 유치원 교사로서의 나에 대한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치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수업’이라는 틀 안에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내가 그렇게 무기력한 존재였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부족함 투성이인 내 모습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다른 친구들이 유치원 교사로서의 진로를 결정하고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시기에도, 나는 내 선택에 대한 후회와 갈등으로 사춘기와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그런데 유아교육에 대한 나의 열정에 불을 붙여주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4학년 1학기 때 들었던 ‘유아교사론’이란 전공수업을 통해서였다. 이 수업을 통해서 나는 내가 왜 유아교사를 선택했는지, 유아교사는 어떻게 발달하고 성장해 나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유아교사는 전문가인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이론적 연구와 논의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내가 선택한 전공이기 때문에 당위적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였던 것들이 실제 다양한 연구들을 기반으로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매료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유치원 교사가 되기로 했던 처음의 선택에 대해 동기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부족하지만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회복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을 마치고 첫 발령을 받았던 유치원에서도 나의 고군분투는 계속되었다. 나의 첫 발령지는 만 3, 4, 5세가 혼합되어 있는 고작 다섯 명뿐인 작은 농촌마을의 초등학교병설유치원이었다. 이런 시골학교에서 아이들과 풍금을 치며 동요를 부르고 함께 텃밭을 가꾸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은 있었지만, 실제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교사 발달이론에서 말하는 생존기 그 자체였다. 만 3세 유아들은 등원하면서부터 엄마 품을 떠나 울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달래야할지 난감했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만 5세 유아들에게는 어떠한 교육적인 지원을 해 주어야 할 지 고민에 빠졌다. 또한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끊임없이 주어지는 행정업무로 컴퓨터에서 자리를 뜨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1년을 보낸 겨울 무렵,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의 퇴임식은 교사로서의 나를 다시 한 번 다잡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눈시울이 붉어지시더니 가늘고 떨리는 음성으로 근 40여 년의 교직생활을 회고하셨는데, 나에게는 그 모습만으로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뭉클함이 밀려왔다. 특히 ‘여러분들도 내 자리에 왔을 때 절대 아쉬울 일을 만들지 말라. 특히 아이들에게…’ 라는 말씀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허둥지둥 보냈던 첫 해 동안 온전히 나에게 의지했던 그 다섯 명의 꼬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결국 그 어떤 지식보다도 아이들을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야겠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이것은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끊임없이 고군분투했던 과정이 바로 계속 이 분야를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선뜻 어떤 길이 옳은 길이고 안전한 길이라고 말해주긴 어렵지만, 지금의 고민과 갈등이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좋은 기회라는 점은 확실히 말해 줄 수 있다. 갈등의 시간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간이며, 그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좋은 인연이나 의미 있는 경험을 통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한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작년 첫 상담에서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마음만 안타까워 애태웠던 내 기억의 편린을 꺼내어 보며, 그 학생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으로 갈등하는 나를 보면, 나 역시 학생들처럼 여전히 ‘유아교육’과 ‘나’의 불협화음 속에서 계속 성장해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