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 교수(사진영상미디어과)
‘꽂히다, 빠지다, 미치다’라는 말은 모두 어떤 한 가지 일에 마음이 이끌려 몰두하는 상황을 이야기할 때 쓰는 표현이다. 요즘 그렇게 뭔가에 꽂혀서 빠져 지내고 싶은 것이 나의 희망사항이기도 해서 꺼내본 말이다.
대학시절 나는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얘기해도 좋을 만큼 모든 일이 재밌고, 때로는 신기했다.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도 해볼 수 있었다. 그만큼 뭔가 꽂혀서 지내다보니 지금도 그때가 그리운 그 시절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럼 그 당시에 나는 뭐에 빠져서 지냈을까? 가장 영향력이 컸던 두 가지를 말한다면 하나는 동아리, 다른 하나는 연애일 것이다. 대학 초년시절 나는 다소 내성적 성품을 지녔던 학생이었다. 그래서 학생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고, 학교 생활에 재미를 못느끼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교정에서 동아리 모집을 한다며 여기저기서 각자의 동아리의 성격과 특성을 뽐내며 선배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중 눈에 들어온 것이 사진동아리였다. 고등학교 특별 활동 시간에 사진에 대해서 호기심으로 짧게 배운 기억이 나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그 후로 신입생 환영회와 정기집회 그리고 MT 등을 거치면서 여러 친구들을 사귈 수가 있었다. 동아리 선배들의 친절한 보살핌이 나의 대학 생활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엔 선·후배와 함께 장기 순회촬영을 하고, 그 결과물로 근사한 사진 전시회도 열었다. 그런 행사들이 나를 사진의 세계에 조금씩 빠져들게 하였다. 이렇게 빠지게 된 사진은 나를 아마추어 사진가에서 본격적인 학문의 길로 인도했다. 몇 년간의 유학생활을 거치고 나서 프리랜서와 광고사진 스튜디오 운영 등의 실전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런 밑바탕으로 나는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사진에 푹 빠져보니 어느새 전문가가 된 것이다.
내가 대학 시절에 푹 빠졌던 또 한 가지는 연애이다. 신입생 시절엔 아는 여학생이 내게 사탕 하나만 줘도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하나 라고 생각했던 순진한 때가 있었다. 그 아이가 워낙 사교성이 좋아서 그런 줄 모르고 나한테만 관심이 있는 걸로 착각하던 시절이다. 그러니 여학생에게 말거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소심함도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해소되고, 이성과의 소통도 조금씩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 여자 친구는 사진 동아리에 들어온 후배 회원이었다.
이 친구와 나는 시험 땐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고, 시간이 날 땐 촬영도 함께 다니고 여행도 하면서 즐겁게 동아리 생활을 하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도 같아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게 되고 어느새 절친한 관계가 되어 애인 사이가 되었다. 그 친구와 나는 많이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성품도 많이 달랐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이해 상충과 다툼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었고, 어떤 힘든 일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미래를 약속받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시련과 아픔은 나를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했던 값진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내기들한테 이렇게 얘기한다. 대학생활 중 꼭 해봐야 할 세 가지 - 동아리, 사랑, 공부 -가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만이라도 꼭 해보라고... 사실 나는 대학 때 동아리와 사랑엔 푹 빠져 지냈지만 공부는 그 둘만큼 열심히 하진 못했다. 하지만 두 가지에 빠져 지낸 경험이 그 후에 이어진 사진 공부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대학생 때 사진 동아리 주관으로 유명 사진가 특강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때 특강을 맡아주신 분이 지금은 은퇴하신 우리 대학교 사진과의 홍순태 교수님이었다. 교수님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상업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이셨고, 그 당시엔 취미로 사진을 하셨다.
학교에서 특강을 마치고 교수님을 모셔다드리는 차 안에서 교수님이 내게 건넨 말이 떠오른다.
“나는 너처럼 사진에 미치지는 않았어, 취미로만 했지...”
그 말은 묘한 감동의 전율이 되어 내가 사진을 더욱 파고들게 한 계기가 되어주었다.
꽂히다, 빠지다, 미치다.
이것은 나를 성장시키고 내게 값진 에너지가 되어준 고마운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