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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역사를 담은 ‘덕수궁 석조전’

등록일 2015년03월10일 00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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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황실 가족의 생활 터전이자 애환이 서려있는 덕수궁, 덕수궁의 석조전(石造殿)이 작년 1013일에 원형 복원이 완료됐다. 대한제국역사관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일반인에게 공개된 석조전에서는 복원된 모습 뿐 아니라 황실 가족의 방과 사진이 전시돼 그들의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석조전, 부국강병을 꿈꾸다

석조전은 조선의 5개의 궁궐 중 유일한 서양식 건물로써 18세기의 신고전주의 유럽궁전의 건축양식으로 건립되었다. 전통 가옥과 단청으로 이루어진 우리 고유의 한옥과는 달라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 대한제국은 왜 전통 한옥과는 다른 서양식 궁을 건설했을까?

그 이유는 고종 황제의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인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고, 이후 덕수궁으로 환궁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이 선포와 함께 그는 대한제국의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기원하기 위한 서양식 궁 건설을 명했고, 그 결과 지어진 궁이 바로 석조전이다.

신고전주의가 깃든 곳

석조전의 중앙 계단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1층으로 들어가면 중앙홀과 접견실, 식당을 비롯한 여러 방들이 보인다. 석조전의 1층은 외국 사신들과의 회담과 만찬을 즐기기 위한 장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구부터 화려한 기둥장식과 좌우대칭으로 배치된 신고전주의 양식을 볼 수 있다. 한편 식탁과 탁자, 의자 등의 가구들은 당시 영국의 가구 회사에서 납품을 담당하여 장식이 절제된 웅장한 남성적인 미가 돋보인다.

접견실은 외국 사신들과 접견을 위한 방으로, 단아한 오얏꽃 무늬 장식이 대칭으로 걸려 있어 석조전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오얏꽃 무늬는 대한제국의 상징 문양으로 이화문(李花文)으로 불리며 석조전 내의 가구 외에도 공문서, 훈장 등에 국장(國章)으로 쓰였다.

접견실에서의 회담이 끝나면 고종황제와 사신들은 만찬을 즐기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해 서양식 코스요리를 대접받았다고 한다. 식기 또한 서양식 식사에 적합한 포크와 나이프, 와인잔들과 함께 영국 신고전주의 양식의 접시들이 진열되어 마치 황실 만찬회에 초대 받은 기분이 들게 한다.

2층은 서재와 침실을 비롯한 황실의 생활공간으로, 1층과 마찬가지로 고풍스러운 가구와 전등이 재현되어 여성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침실은 고종황제와 그의 배우자였던 순헌황귀비를 위해 지어졌지만 고종황제는 승하하기 전까지 덕수궁 함녕전에서 생활했으며, 순헌황귀비는 준공 후 몇 개월 뒤에 훙서(薨逝)하여 아쉽게도 직접 사용되지 못했다. 다만 그들의 아들인 영친왕과 영친왕비가 귀국 시 임시 거처로 사용해 종종 침실로써의 기능을 했다.

이외에도 대한제국과 관련된 사진, 동영상 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황실 사람들의 생애를 볼 수 있다. 3월부터는 석조전 정원도 개방한다고 하니 함께 둘러보면 좋을 듯 하다.


장소: 서울 시청역 1번 출구 덕수궁 석조전
관람시간: 9:30~17:00
휴일: 매주 월요일
관람 요금: 덕수궁 입장료 1,000(25~64)
예약/홈페이지: www.deoksugung.go.kr


한희수 기자 hhs80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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