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았다 뜨면 세상이 바뀌어 있다. 오늘의 최신 유행도 내일이면 지나간 유행이 돼버릴지 모른다.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올해 초 방영된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특집은 한물간 듯 했던 복고바람을 일으켰다. 가요계에서는 11년 만에 힙합 듀오 지누션이 신곡을 들고 나왔으며 디자인계, 식품업계, 패션계 너나 할 것 없이 복고마케팅이 대세다. 이러한 복고바람은 스크린 계에도 불어왔다.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격변기 속에서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내 1,423만여 명의 관객을 사로잡아 역대 흥행순위 2위, 역대 복고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이렇듯 스크린 속 복고열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복고 장르의 주춧돌 「써니」와 「건축학개론」
사실 국제시장이 복고영화로서 처음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매년 과거를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됐으며, 그 중 2001년 개봉한 「친구」를 시작으로 80년대 고교생 짱의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영화 「품행제로」와 1978년 유신시대 말기 십대들의 일상과 일탈을 그려낸 「말죽거리 잔혹사」 등이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복고를 장르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한 작품은 따로 있다.
2011년 개봉한 강형철 감독의 「써니」는 고교시절 칠공주파 ‘써니’로 함께 했던 친구들을 25년 만에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교에 하나씩은 있는 불량서클을 소재로 재미는 물론 감동까지 전했다. 그 속에서 학창 시절의 우정과 첫사랑의 일화, 영화 「라붐」의 삽입곡 ‘Reality’, 나미의 ‘빙글빙글’,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등은 8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써니」는 개봉 당시 73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해 대한민국을 아날로그 감성에 빠지게 했다.
이어서 2012년에 개봉한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 개론」은 1990년대 복고의 포문을 열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대학 새내기 시절의 첫사랑으로 얽혀있는 두 남녀가 15년 후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명장면 중 하나인 CD플레이어를 재생해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장면은 첫사랑을 추억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 영화는 30대의 정서를 자극해 410만여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전 멜로 영화 관객수가 보통 300만 명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매우 의미 있는 수치다. 「건축학 개론」으로 시작된 90년대 복고 열풍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로 이어지며, 음반 시장을 비롯해 문화 전반으로 퍼져 나갔다.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90년대를 복고의 주 무대로 옮긴 것이다.
2015 극장가 트렌드, Back to the 70's
복고마케팅 속에선 90년대가 대세지만 극장가에선 70년대가 대세로 떠올랐다. 왜 70년대일까? 고도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산업화가 급격히 이뤄지며, 반독재 정서가 들끓고 낭만과 저항정신을 담은 포크음악이 유행하던 당시는 영화 속에 녹여낼 소재가 넘쳐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소재를 녹여낸 영화가 바로 국제시장의 흥행에 힘입어 연달아 개봉한 「허삼관」, 「강남 1970」, 「쎄시봉」이다.
국제시장의 다음 타자로 가장 먼저 개봉한 하정우 감독의 「허삼관」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폭넓은 과거여행을 보여줬다.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허삼관」은 가진 건 없지만 가족만 보면 행복한 남자 허삼관이 11년간 남의 자식을 키웠음을 알게 되며 전개된다. 특히 휴먼드라마 「허삼관」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사연을 고증을 통해 생생히 재현했다.
「허삼관」보다 일주일 늦게 개봉한 유하 감독의 「강남 1970」은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에 이은 유하 거리 3부작의 완결편이다. 개발이 시작된 강남땅을 둘러싼 두 남자의 욕망, 의리, 배신을 통해 70년대의 모습을 그려내며 한국형 복고 느와르 영화를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김현석 감독의 「쎄시봉」은 70년대의 낭만을 그리고 있다. 무교동의 음악 감상실 ‘쎄시봉’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자 청춘들 사이의 사랑이 싹트는 공간이었다.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조영남 등의 포크 가수들이 이곳에서 배출됐고,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웨딩케익’ 등의 명곡 또한 그 시절에 탄생했다. 「써니」, 「건축학 개론」, 「수상한 그녀」와 함께 「쎄시봉」은 영화와 복고음악의 만남은 성공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무엇이 스크린 계에 복고를 부르는가?
복고는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소재이다. 제작자들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자 과거를 끄집어냈다. 급변과 혼란으로 물든 현대사의 다양한 분위기와 사건, 사고 등은 제작자들에게 좋은 소재임에 틀림없다. 2015년의 복고영화들이 70년대에 주목한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디지털화되는 사회에서 더 이상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져 가는 물건들을 영화 속으로 데려와 기성세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젊은 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삼포세대’를 넘어 ‘오포세대’가 되어버린 요즘, 복고를 통해 위안을 얻고 현실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현상이 영화계에까지 복고열풍을 일으켰다. 이렇듯 문화 전반으로 퍼진 복고는 열풍을 넘어서 하위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과연 복고가 앞으로 어떻게 더 영화 속에서 펼쳐질지 기대되는 바이다.
김경아 수습기자 rlaruddk9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