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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회 학술문학상 대상작] 무사고 730일 (2) - 박인호(미디어콘텐츠과)

등록일 2015년12월07일 14시05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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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은 허탈함을 넘어서 어이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나는 씩씩거리며 뛰쳐나왔고, 선임들이 모여 있던 무리에 가서 담배를 물며 말했다.

문규 저 새끼가 다 일어나게 시키던데 말입니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진짜...”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예상치 못했던 목소리가 들렸다.

? 저거 완전 미친 거 아니야?”

수송관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리갈굼이 수송관으로부터 계획되었다는 것을.

그 일련의 사건 이후로 나는 문규와 완전히 멀어지게 되었고, 선임들을 비롯한 간부들도 문규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문규는 항상 웃으며 후임들을 대했다. 그렇게 우리는 철원의 겨울을 맞았다.

그 겨울 어느 밤, 침낭 속에서 웅크리고 자던 나는 침낭을 뚫고 들어오는 추위에 발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다가 잠에서 깼다. 기상시간이 두어 시간 남은 새벽, 부대에 남아 인원을 관리하는 간부인 당직사관의 목소리가 생활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기상! 기상!”

나는 차가워진 발가락 덕에 먼저 잠을 깨서 주변 전우들의 부스스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원의 겨울에, 그것도 이 시간에 모두를 기상시킨 것은 누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적어도 이들은 알고 있었으리라. 착잡한 병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얄궂게도 생활관 안의 스피커가 다시 울렸다.

전 대대 병력은 현 시간 부로 빗자루 들고 대대 사열대 앞으로 집합한다. 눈이 많이 내렸다. 빨리 빨리 나와라.”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일어나는 전우들을 보고 있자니 먼저 일어난 나는 왠지 모를 통쾌함이 들었다.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구령대와 비슷한 사열대 앞에 모인 병사들은 당직사관으로부터 구역을 배정받고, 각자 맡은 지역으로 가서 눈을 쓸기 시작했다. 정비고 입구부터 차량이 지나 다니는 길목을 쓸어야 했던 우리의 구역은 다른 병사들의 구역보다 넓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내 손에는 빗자루보단 담배가 더 빈번히 쥐어져 있었다. 눈을 치우기 시작한지 삼십 분쯤 지났을 때, 흰색 마티즈 한 대가 부대 입구를 통과했다. 수송관의 차였다. 수송관의 마티즈는 운전자의 성격처럼 급하게 달려와 우리가 쓸어 놓은 길 위를 지나쳐 수송 정비고 앞에 멈춰 섰다. 마티즈에서 내린 수송관은 무사고 푯말을 스윽 쳐다보더니 담배를 물고 우리쪽을 향해 소리쳤다.

! 정문규! 이리 와봐!”

쟤는 아침부터 참 고생이다 싶다가도 다 제 업보인데 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규는 빗자루를 들고 수송관에게 달려갔다. 멀리 있어 수송관이 말하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문규에게 어제 하다 만 차량 정비를 마무리하라는 것 같았다. 정비고에 들어있는 차는 아마 그날 운행이 있었던 차였을 것이다. 문규는 후임 정비병들을 데리고 정비고로 들어갔고 수송관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 몇 명만 데리고 들어가면 되지 왜 정비병을 싹 끌고 들어가는 거야. 눈은 또 운전병이 다 쓸겠네...라고 불평하며 나는 주차돼 있는 자동차 사이로 들어가 또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시간 때우는 덴 담배만한 게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정비고 안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5톤 트럭 밑으로 들어간 문규가 차를 띄우기 위해 자키를 구동축 밑에 놓았다. 차 밖으로 나온 문규는 후임들을 바라보며 설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차를 띄울 때 자키는 바퀴와 바퀴 사이의 구동축에 놓아야 안전하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후임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수송관이 못 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정비병들은 문규의 지시에 따라 정비를 하기 시작했다. 수송관의 눈에는 이 행동들이 답답해 보였는지 소리를 질렀다.

! 그냥 빨리빨리 해! 오늘 배차 있는 차인 줄 몰라?”

수송관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내가 있는 곳 까지 들렸다. 내 발 옆으로 필터 앞부분까지 다 타버린 담배꽁초가 꽤 쌓였을 때 쯤, 정비가 마무리 된 것처럼 보였다. 정비병들은 차량에서 한 발자국 떨어졌고, 수송관이 그 앞을 지나쳐 5톤 트럭위에 올라탔다. 나는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었다. 수송관이 후진해서 차를 빼겠지 하는 순간, 5톤 차량 밑에 있는 자키를 치우려는 신병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 쟤는 뭐하는 거야... 하고. 그 순간,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제야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진을 알리는 경고음이 수송 정비고에 울려 퍼졌고 5톤 트럭의 거대한 바퀴는 지면을 박차기 시작했다. 그 찰나의 순간, 문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량 밑으로 다이빙 했고 신병은 정비고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움직이던 병사들은 어떤 소리와 함께 모두 멈춰진 것처럼 보였다.

콰직

내 입에서 방금 다시 물었던 담배가 힘없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그 주변으로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병사들 틈 사이로 문규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다시 병사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이후로 본 것은 따뜻했던 문규의 열정이었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듯한 문규의 열정은 병사들의 군화 사이를 비집고 새하얀 눈 위로 흘러 나왔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따뜻한 색깔의 빨간색을 본 적이 없다. 그 열정을 담고 있던 문규의 새빨간 피는 주변 바닥의 눈을 녹였다. 하지만 그 피 위로 다시 차가운 눈이 덮이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등 떠밀리듯 생활관으로 돌려보내졌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나는 대대장 출근을 위해 운행을 나가게 되었고, 돌아온 나는 주차를 위해 수송 정비고로 들어왔다. 병사 없는 수송 정비고에서는 간부들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차갑고 냉정하던 수송관의 목소리는 더 이상 없었고 흥분과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가 다른 간부들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아니, 젠장, 우리만 조용히 하고 애들 입단속만 시키면 문제없다니까?”

수송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하고 정비관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수송관은 목소리를 좀 더 높이며

우리 무사고 깨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무사고 지켜야 할 거 아냐!”

라고 말했다.

무사고가 중요하긴 하죠...”

하는 다른 간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생활관으로 들어왔다. 생활관에 앉아 생각해 보니 내가 어떻게 대대장을 태우고 부대로 들어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기억나는 거라곤 대대장이 여느 때와 같이 나에게 무사고가 며칠인지 물었을 때, 내가 ‘730일입니다.’라고 답한 것 뿐. 마음을 추스른 후 대대장실로 올라가는 길에 수송관이 대대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일과가 끝난 뒤 집합해 있던 우리가 대대장으로부터 들은 말은 잠을 자던 정문규 상병이 당직사관에게 화장실 간다고 하고 나간 뒤, 보일러실에서 자살했다는 말이었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고, 나 역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다음날 수송부에는 무사고 731일 이라는 푯말이 아무렇지 않게 붙어있었다.

여기까지가 제 친구 문규의 이야기입니다. 3년전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입 다물고 있던 우리들 뿐 입니다. 심지어 문규의 어머니 조차 아들이 자살한 것으로 알고 계십니다. 이 글이 널리 퍼져 문규의 목숨과 맞바꿔진 가증스런 숫자가 내려가길 바라며, 0사단 수송대대의 관련 간부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길 바랍니다. 이제는 잊고 지내는 듯한 그들이 죄책감에 잠 못 이루길 바라며, 따뜻한 심장을 가졌던 문규의 어머니가 발 뻗고 편히 주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너를 외면했던 못난 친구인 나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 문규야. 다시 너의 그 티 없는 웃음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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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에서 눈을 뗀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눈은 아직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다.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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