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다음날 나는 그 총포상이란 곳에 들이닥쳤다. 사냥용 총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었다. 문 위에 걸린 헌팅트로피는 가게의 유일한 장식이었다. 사장이라는 남자는 비쩍 마르고 등이 굽은, 언제나 흘겨보는 사람이었다.
“...... 정말 형사 맞습니까?”
나는 경찰증을 내보였다. 그는 바로 낚아채선 벗겨버릴 듯이 증을 탐독했다. 1분 후에야 그는 내게 돌려주며 먈했다.
“진명이는 우리 가게에서 일했던 놈이 맞습니다만 그놈이 역시 무슨 일을 저질렀나봅니다?”
“역시 라면 무슨 뜻이신지?”
“그놈이 갑자기 일을 그만둬버린 게 그 이상한 돼지가 들락거리던 직후거든요.”
“어떤 사람입니까?”
“돼지였어요, 돼지. 더러운 돼지 말입니다. 말도 안될 만큼 부자인 것 같았어요.”
[ 사장은 언젠가부터 울적해지고 음침해진 진명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느날부턴 한 의심스런 부자놈이 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찾아와선 끌리는 총을 종류별로 하나씩 구입하는 말도 안되는 부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명에게만 설명을 받고, 진명과만 거래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사장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가게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진명과 놈이 뭔가 일을 벌여 가게에 해를 끼칠까 두려워진 사장은 하루는 일부러 가게를 비우고서, 멀리서 가게를 지켜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부자놈이 왔다. 또 무슨 총을 사러왔는지 진명에게 설명을 듣던 그는 갑자기 진명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진명이 바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놈은 가게의 헌팅트로피를 가리더니 웃으며 무슨 말을 했고, 사장은 기분이 더러워져서 더 이상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을 마지막으로 부자도, 진명도 더 이상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다. 진명은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
“더러운 돼지였나봅니다. 둘 모두.”
“음... 게이를 말씀하시는 거였군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김진명씨는 지금 실종된 상태입니다.”
“그렇담 머나먼 곳으로 둘이 떠났나보죠. 돼지들이 뛰노는 더러운 곳으로. 미국이라던가. 그런 곳을 뒤져봐요 형사님. 어쨌든 난 잘못한 게 없어요.”
수사의 방향은 비로소 한가지로 확정되었다. 그 부자를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k를 찾아가야만 한다. 내 마음 한 편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불쾌해지기 시작한다.
그 전날 k와 담배를 피우며 나눈 대화는 몇마디 되지 않았다. 날씨는 한창 추워지고 있었다. 한창 정보를 꺼내놓던 k는 더 이상 꺼내놓지를 않았다. 나를 움직이게 할 만큼의 정보만을 꺼내놓고, 모든 정보를 다시 의도적으로 덮고 있었다. 나는 그가 조심스러운 것인지 즐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총포상에 가서 단서를 잡아오시면, 제가 더 얘기를 드릴게요. 저도 제가 아는 게 확실한 건지 잘 모르겠거든요. 기억이란 게 그렇잖아요.”
나는 더 이상 조사할 곳이 없어 허덕이면서도, k의 말대로 그대로 따르고 싶지가 않았다. 수사 전체가 k에게 머리채를 쥐어잡힌 것만 같았다. 나는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런 기분일 뿐일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수사할 곳이 없었다.
“좋습니다. 일단은 총포상으로 가보겠습니다. 하지만 총포상에서 나오는 게 없다면, 더 이상 참고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쪽에서도 이미 수사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었거든요. 불쾌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미 잡혀가는 수사에 불필요한 단서들이 주어지면 오히려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요. 저는 참고만 해주시면 됩니다. 대신 총포상에서 나오는 게 있다면 다시 저를 찾아주세요.”
“물론이죠.”
k는 절반이 남은 장초를 밟아 껐다.
“그런데 김진명씨와 언제부터 친구이신 겁니까?”
“소꿉친구요. 이 친구만큼 서로 아끼는 친구도 없을 겁니다. 서로 숨기는 게 없었죠. 그래서 말씀드릴 게 많은 거고, 수사에 협조하고 싶은 거고요.”
“그렇군요. 그럼.”
k가 가고나서 부하 경찰놈들은 도저히 수사한 게, 수사할 게 없다고 호소해왔다. 나는 꽁초를 밟으며 말했다.
“내일 총포상을 가볼 거야. 그리고 오늘은 저 새끼 뒤를 쫓을 거고. 뭔가 구려.”
그리고 그날 솜씨 좋은 나와 내 부하 경찰들은 그의 차 뒤를 놓치고 말았다.
k와 다시 만난 것은 사흘 뒤 사냥터에서였다. 나는 부하 경찰들과 그의 들썩이는 헌팅카에 앉아 함께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곳은 도저히 처음이었고, 풀과 화약 냄새로 머리가 아팠다. 나는 차가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k는 종종 사냥을 온다고 말했다.
“사슴을 좇는 일은 생각보다 재밌거든요. 지금 추격하는 사슴의 이름은 제이콥이에요. 누가 지었냐고요? 제가 부르는 이름이죠. 눈에서부터 뿔 사이에 하얀 반점이 세 개가 있어요. 배 쪽에는 까만 상처가 나 있는데 저번달에 제가 쏘아 맞힌 상처예요. 한 달 째니까 이젠 녀석도 나를 알죠. 그치만 사슴이란 도무지 도망쳐다니기만 해서, 어떨 땐 지루해지기도 해요. 뭐랄까, 항상 똑같은 자극만 주는 거니까. 뒤쫓기만 하는. 어쩔땐 저 놈이 나를 맘먹기도 했으면 싶어요. 총으로 겨누는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던지. 짜릿할 것 같아요. 그치만 사슴이란 도무지 그러는 놈이 아니죠. 안전하고 싶은 초식 동물일 뿐이니까요.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죠.”
그는 말하는 중간중간 불룩한 앞주머니에서 반짝이는 것을 꺼내어 시가 끝을 잘라냈다. 나는 맡아야 할 사건들이 많았고 한시가 급했다. 더 이상 찾아낼 단서가 없었다. 내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가 입을 막았다. 쉬! 그리곤 속삭였다. 녀석이 저기에 있어요.
차를 멈추고 총을 견착했다. 나는 수사를 해야했다. 그가 조준한 채로 입을 막았다. 제발 쉿! 녀석이 달아날거예요! 쉬!
“젠장!”
풀숲에서 후다닥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조준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사냥 구경하러 왔습니까? 만나잔 곳으로 와줬더니 젠장!”
그는 가만히 총을 내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진명이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여기서 3km떨어진 제 8사냥터에 한 오두막을 짓고 있다고 했었어요.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예요. 더 이상 제가 필요 없으시겠죠. 그럼.”
“필요 없어 젠장.”
나는 부하들을 데리고 그대로 경찰서로 돌아갔다. 총성이 사냥터에서부터 몇 발 울려왔다. 부하들은 8사냥터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욕을 섞어서 안 갈 거라고 했다.
“총포상 사장한테서 용의자새끼 몽타주 나오면 그걸로 잡아버리면 돼. 용의자새끼가 뭔 일을 저지른 게 아니더라도 잡아서 심문하면 돼. 그럼 뭐라도 나와. 그걸로 가면 돼. 다른 건 더 필요 없어. 알았어? 알았으면 몽타주라도 빨리 뽑으라고 재촉이라도 하러 꺼져.”
부하들을 내려준 나는 바로 8사냥터로 가고 있었다. 지랄 맞다. k는 분명히 뒤돌아선 채로 웃고 있었다. 사냥터에서 나오며 분명히 보았다. 젠장. 나는 그의 입에 물려있었다. 그의 의도대로 휘청이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이 사건을 잡고있기 싫어졌다. 더 이상 k와 말을 섞기가 싫었다. 진명이 죽었던 범인이 누구던 난 사건을 빨리 끝내버리기로 했다.
노을이 지고 있었고, 약 3시간동안 하얀 오두막에는 누구도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그제야 차에서 내려 풀숲을 내려가 오두막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 계단에서부터 오두막 문 밑까지 핏자국이 쓸려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바로 권총을 꺼내들고 문을 차고 들어갔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핏자국 끝에서 죽은 사슴과 k를 보았다. k는 사슴 가죽을 벗기고 있었다.
나는 k를 겨냥했다. k는 칼을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