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정보처리과 이용국 교수
오늘은 화요일. 오후 6교시부터 3시간 동안 컴퓨터 네트워킹 강의가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 상에서 데이터를 오류 없이 최적의 경로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는 날이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므로 신입생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점심시간 이후라 학생들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스마트 폰으로 영양가 없는 것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오늘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스마트 폰은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모르는 영어 단어를 곧바로 찾아보고, 공학용 계산기를 사용하여 복잡한 계산도 가능하며, 수없이 많은 약자와 생소한 용어가 범람하는 정보통신 분야의 지식을 인터넷 검색으로 단박에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 인터넷의 원조인 아르파넷(ARPANet)을 설명하면서 미국 국방부 이야기를 하고,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을 검색하여 우리나라 아리랑 위성 3호가 촬영한 해상도 높은 펜타곤 사진을 보면서, 아리랑 위성과 우리나라 방송통신위성인 무궁화호와의 차이점과 위성을 이용한 인터넷에 대한 개념을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참 알찬 수업이 진행될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학생들은 스마트 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인터넷 게임과 채팅에 빠져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 교수가 옆에 가서 지켜보고 있어도 모른다.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가 지켜보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스마트 폰 그만 만지고 수업 들으라고 잔소리하면, 금방 “네” 하고 대답하면서 스마트 폰을 내려놓는다. 그런데 뒤 돌아서면 또다시 스마트 폰으로 뭔가를 한다. 어떤 것이 그렇게 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신없이 빠져든다.
갑자기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1903년에 그린 「에코와 나르키소스」라는 그림이 생각난다. 나르키소스는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느라 정신을 놓고 있고, 에코는 절절한 사랑의 눈빛에도 전혀 반응이 없는 나르키소스를 바라보며 애간장이 타지만, 언젠가는 자기를 바라볼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스마트 폰에 폭 빠진 나르키소스 학생과 그를 안타깝게 응시하는 에코가 되어 버린 내가 투영되어 보이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장일까.
아름다운 숲의 님프였던 에코와 미소년 나르키소스에 얽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쓰고 싶다. 21세기 스마트 폰 신화로 바꾸고 싶다.
미소를 지으면 미소로 대답해 줄 것 같은 스마트 폰. 눈물로 뒤범벅이 된 슬픈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 같은 스마트 폰.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룰 수 있게 해 줄 것 같은 스마트 폰. 이런 착각 속에서 스마트 폰에 폭 빠져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나르키소스 학생을 불쌍히 여긴 에코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를 찾아가 스마트 폰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더 이상 도취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갖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제우스의 마음에 변화가 없자 3일 밤낮을 눈물로 호소하여 결국 제우스의 허락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이미 헤라의 저주에 의하여 남의 말만 되풀이 할 수밖에 없는 에코의 눈물에 제우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제우스는 헤라가 에코에게 내린 저주와 네메시스가 나르키소스에게 내린 징벌을 풀어 준다. 드디어 나르키소스 학생은 스마트 폰으로부터 벗어나 에코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수업시간 내내 스마트 폰에 코를 박고 나르키소스가 되어버린 학생들에게 명하노니 하루빨리 스마트 폰으로부터 탈출하라!”
아참, 지금 몇 시지? 하마터면 수업시간에 늦을 뻔 했네. 교재와 USB를 챙겨서 빠른 걸음으로 연구실을 나선다. 오늘은 에코의 몸부림이 나르키소스의 심금을 울릴 수 있겠지? 지난 주 보다 더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하면 그렇게 될 거야. 아직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희망이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