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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전특집③] 밀짚모자, 응원가, 그리고 기자

등록일 2013년05월21일 00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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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땐 청회색 세상이었는데 단대오거리역 출구를 나서니 어느새 뽀얗게 아침이 밝아있다.
100원짜리 셔틀을 타고 남관 앞에서 내려 천천히 복지관으로 걸어 내려오는 길. 운동장에선 벌써부터 각종 준비가 한창이다. 나를 뺀 모두가 모여 있는 자리에 멋쩍은 웃음을 한 번 던지고 서둘러 빈 의자에 앉았다.
그 날 있는 경기의 목록이 모두에게 돌아가고, 각자가 관람할 경기가 모두 정해지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수첩과 볼펜, 카메라를 들고 우르르 학보사를 나선다.
오늘의 첫 경기는 치기공과와 색채디자인과의 축구경기.
축구경기는 모든 종목 중 가장 먼저 시작해 가장 늦게 끝나는 경기다. 지름20cm짜리 가죽공이 뭐기에 다 큰 남자 22명이 쫓아다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며 경기를 감상한다. , 역시 치기공과. 5 0 이라니. 이렇게 하루 종일 경기를 보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몇 가지 발견하게 되는데, 여학우들이 절대 다수를 정하고 있는 학과들의 응원소리가 남학우들이 많은 과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토목과 응원팀은 절대로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가 중천에 뜨자 현저히 줄어든 그늘을 찾기 위해 조난자처럼 운동장을 배회한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어디서 오셨어요?”
수상한 밀짚모자 차림으로 수첩을 들고 유심히 경기를 살펴보는 우리들을 신경 쓰는 사람도 간혹 나타난다.
내심 응원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하는 생각이 들지만 덩치 큰 남학생들에게 위축되어 최대한 공손하게 소속과 취재 이유를 밝혀야 했다.
마침내 그 날의 모든 경기가 끝났다. 우렁차다 못해 쩌렁쩌렁 울리는 응원소리도,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들리는 토목과 부르스도 서서히 잦아든다.
학교의 가로등이 켜질 무렵이 되서야 학보사의 마지막 일정이 시작된다. 하루 종일 경기를 관람하며 빽빽해진 수첩과 온갖 사건, 사고로 엉망인 머리를 쥐어짜 모니터 위에 짧고도 강렬하게 엑기스를 추출한다.
저녁으로 온 치킨 마요 도시락을 먹으면서, 계절과 맞지 않는 보온용 지방층이 서서히 복부에 축적돼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손가락을 바쁘게 놀린다.
드디어 집에 갈 시간이 다가온다.

이형렬 수습기자 pak_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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