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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우촌독서대상] 대상 수상작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등록일 2014년11월04일 00시00분 URL복사 프린트하기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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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엄마의 낡은 사진첩을 꺼내 본 적이 있다. 부모님이 데이트하는 모습, 엄마의 학창시절, 더 멀게는 엄마의 어릴 때 얼굴까지.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엄마 사진을 의미 있게 들여다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이야, 누나들이 간혹 보여주곤 해서 그리 낯선 것은 아니었으나 사진첩 안에는 내 나이의 엄마가 있었다. 아니, 내가 겪어서 살아본 적이 있는 열다섯, 스물의 사람이 내가 짐작하지 못할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한 듯 내 곁에 있어온 존재이지만, 내가 아는 건 30대 이후의 엄마뿐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지금의 나와 나이가 같았을 스물셋의 여자는 스물여섯의 아빠를 만나 어떻게 사랑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가정을 꾸렸을까.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를 읽을 때의 느낌은 엄마의 낡은 사진첩을 본 날을 떠올리게 했다.

소설의 두 번째 페이지에서 큰 딸은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 실종 전단지를 만들 때에야 엄마의 진짜 나이를 알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통성명을 하며 나이를 묻는 우리나라에서 이름나이는 그 사람을 알아가는 데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 요소에 해당한.

소설 제1장에서 큰 딸 지헌이 엄마의 나이를 알지 못했었다는 것은 그 동안 자신의 엄마를 한 개인으로서 잊고 지냈다는 것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는 1936년생인 엄마를 1938년생으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 단지 숫자에 불과한오해만은 아닐 것이다. 큰 딸은 엄마가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개집을 지어주지 않는 이유를 오해했었고, 자신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존재인지 알지 못했으며, 장미묵주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엄마의 설렘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이유로 지헌은 엄마의 출생에 얽힌 진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잃어왔다. 작품에서 가족들이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과정은 잊어버리고 지냈던엄마에 대해 더듬으며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소설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하여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 개월째다.’를 첫 문장으로 하는 에필로그로 끝을 맺는다. 엄마를 잃어버린 날 이후 어느 때부터 큰 딸이 피에타 상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까지 구 개월 남짓한 날들은, 아마도 아버지와 자녀들이 엄마에 대해 오롯하게 생각해 보는 처음의 기회였을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의 전문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리스트의 말이다. 이 말을 전문으로 삼은 작가의 의도처럼 이 작품은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언뜻 생각하면, 소설은 부모가 살아계실 때 잘해라,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하고, 효도할 수 있을 때 효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때의 사랑의 의미를 우리가 숱하게 교육받은 효도와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것이 효도를 주제로 한 소설이었다면 작가는 제3장의 주요인물로 아버지가 아니라 둘째 아들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4장의 마지막에서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이라 서술되는 그 감정을 확대하여 곰소에 사는 그 사람이야기를 대신했을 것이다. ‘라는 주제를 전달하기에는 그 편이 더 교훈적이고 안전하다. 그러나 그랬다면 그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진부해졌을지 모른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리스트의 말이 엄마를 부탁해에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사랑은 앎이다라는 숨은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철학박사 강신주는 자신의 강연에서 참가자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버지 사랑하세요?”
질문을 받은 사람은 , 그럼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뭘 좋아하나요? 좋아하는 색은 뭐예요?”라고 박사가 다시 물었다. 참가자는 대답하지 못했고, 그 후 같은 질문을 받은 몇몇의 청중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경숙의 작품에 등장하는 자녀들과 아버지도 엄마에 대해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물론 소설 속 엄마는 자녀들을 조건부로 사랑하지 않았고 자식들에게 자신의 고집을 크게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상대가 바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라는 강신주 박사의 말에 동의한다.엄마를 부탁해의 제1장에는 아무도 모른다.’ 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표면적으로는 없어진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이 이야기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모른다.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이에 더해 엄마가 아팠다는 것을 모두가 보고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하게 만든다. 이를 생각할 때 이 소설의 전문에 적힌 리스트의 말은 알고자 노력할 수 있을 때 관심을 기울이라는 문장으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매우 중요한 작가, 아픈 사람을 돌보고 치유하는 약사가 자녀인데도 엄마의 몸과 마음의 결핍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가족들은 엄마를 맛있는 겉절이를 해주고 김에 밥을 싸서 먹여주다가 나이 먹으니 먹지도 않는 떡을 보내주는 사람으로만 알았을 뿐, 엄마가 가족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엄마에게 필요한 것에서는 눈을 돌렸다.

4또 다른 여인에서 이들의 엄마는 조금 다르다. 3장 읽기를 마치고 제4장을 펼쳐들었을 때, 나는 제목이 가진 의미를 오해했었다. ‘또 다른 여인이 큰 아들 형철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다른 여자를 뜻하는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자신에게 매정한 시누이를 원망하지 않고, 어린 시동생을 애틋하게 사랑하며, 소망원의 아이에게 죽은 시동생의 이름을 붙여 돌보아온 사람이기에, 어쩌면 남편이 데리고 들어왔던 시앗에게조차 여자 대 여자로 연민을 가졌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그러나 제4장의 제목이 의미하는 또 다른 여인은 형철 엄마, 지헌 엄마, 균의 형수가 아닌, ‘여인으로서의 박소녀였다. 소설을 읽는 동안 작품 속 엄마가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존중받지 못했음을 한탄했던 나 또한 제4장에 이를 때까지 박소녀 씨를 여인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아내를 먹이기 위해 엄마에게서 수제비 반죽을 빼앗아갔던 그 사람은 엄마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박소녀라는 이름을 듣고서 미소를 보였다. 1장에서 큰 딸 지헌이 엄마의 진짜 나이를 모르고 살아온 것을 알게 되는 장면과 사뭇 대조적이다. 자신을 유난히 챙겨주던 시동생을 잃고, 시동생의 죽음에 대해 누명까지 썼던 엄마는, 가족들이 나누어주지 않는 아픔을 그 사람과 나누었다. 일상에서 켜켜이 쌓여오는 상처를 모두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의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 곰소로 떠난 그 사람을 찾아갈 때, 엄마는 한 여인으로서의 박소녀였다. 엄마는 그 사람에게 자신이 마치 무언가를 맡겨놓은 사람처럼 굴었다며 미안해하기도 하고, 자신 때문에 그 사람이 곰소로 도망갔을 것이라 자책했지만, ‘그 사람역시 박소녀를 만날 때만은 스스로가 그 누구의 아버지나 아들이 아닌 자연인 이은규였을 것이다.

얼굴도 보지 않은 채 결혼한 남편인데도 가죽잠바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던 엄마. 상처받은 아내로 집을 떠났다가도 큰 아들의 눈물 앞에 억척스런 어미가 되어 돌아왔던 엄마. 외국으로 돌아다니는 큰 딸을 나무랐지만 마음으로는 딸의 세계를 동경했던 엄마. 남모르는 친구와의 비밀스런 소통뿐 아니라 이 모든 모습이 1936년생 자연인 박소녀를 이룬다. 그 어느 측면만이 진짜 엄마라고 진짜 박소녀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가족들보다 소망원의 홍태희나 곰소의 그 사람이 엄마를 더 잘 안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가족은 그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여야 한다는 당위와 가족에 대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이 사람들을 외롭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소설을 우리 엄마와 함께 읽었다. 엄마가 즐겨보시던 TV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였던가? 잠들기 전 조금씩 읽던 엄마를 부탁해가 내 방에서 어느 날 사라져 찾아보니 엄마 침대에 가 있었다. 그 뒤부터 밤마다 엄마가 잠드시고 나면 살짝 책을 꺼내 와서 읽고 다시 엄마 방에 가져다 놓기를 며칠 반복했다. 우리 엄마도 이 작품을 통해 어떠한 공감과 회한을 느꼈을 것이다. 작품 속 엄마가 되어 누나들과 나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일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아내로서의 아픔에 공감하며 젊은 날을 돌아보거나 시댁의 구박,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오히려 아들과 딸들의 마음으로 엄마의 엄마가 살아온 인생을 짐작해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와엄마를 부탁해속 박소녀 엄마가 개인으로서 저마다 다른 여인이듯, 세상 모든 엄마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서로 다른 서사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신경숙이 그려낸엄마를 부탁해엄마는 우리 모두의 엄마이다. 작품 속 가족들이 엄마를 잃어버린 후 찾아다니는 이야기도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난 이상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엄마를 부탁해가 소설로 출간된 이후,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연극으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들 각자에게 특별한 감회를 주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와 같은 스물세 살이었을 때, 결혼을 앞둔 한 여자는 어떠한 인생을 꿈꾸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어떠한 서사들을 가슴 속에 쌓아왔을지, 내가 엄마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아들인지, 내가 부모가 되고 또다시 엄마 나이가 되면 알 수 있을까. 작품 속 자녀들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엄마를 잃을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엄마를

신구학보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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